728x90 장소106 보령의 최치원 유적 보령의 최치원 유적으로는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의 비문과 최고운 유적을 들 수가 있다. 성주사는 백제 법왕 때 처음 지어졌는데 원래의 이름은 오합사였다. 이후 통일신라 문성왕 시기에 당나라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온 낭혜화상이 절을 크게 다시 일으키면서 이름을 성주사로 고쳤다. 성주사는 당시 통일신라에서 자장 규모가큰 대규모 사찰이었다. 최치원은 이 절을 중창한 낭혜화상이 돌아가신후 그의 공덕을 찬양하며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의 비문을 지었다. 낭혜화상비는 신라 석비 중 규모가 가장큰 작품인데 여기에서 최치원의 뛰어난 문장력이 다시 한번 크게 발휘가 되었다. 최치원은 보령시 남포면 월전리에 머무른 적도 있다. 선생은 이곳 병풍바위에 한시(漢詩)를 새겨 놓았는데 이것을 최고운 유적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아쉽게도 바위.. 2015. 10. 5. 군산--- 최치원 군산에는 최치원이 어지러운 나라를 보며 근심과 걱정을 달랬다는 자천대와 선생을 제향하기 위해 세워진 문창서원이 있다. 어린시절에 최치원은 아버지가 부임한 군산 내초도에 와서 산적이 있다. 이때 이 곳 자천대에서 자주 글을 읽곤 했는데 당시 글 읽는 소리가 당나라 까지 들렸다고 한다. 최치원의 글읽는 소리에 감탄한 당나라는 사신을 보내 최치원을 데리고 갔다고 전해진다. 이후 최치원은 신라로 돌아왔을때에 어수선한 나라를 생각하며 자천대에 올라서 걱정과 근심을 달랬다고 한다. 자천대의 맞은편에 최치원 선생을 모시기 위해서 세운 것이 문창서원이다. 문장력이 뛰어남으로 인하여 최치원이 받은 시호인 문창을 서원의 이름으로 한것이 특색적이다. 최치원이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군산 내초도에 와서 생활한 것을 볼때 최.. 2015. 10. 5. 중국의 최치원 관련 유적 중국에서 최치원 관련 유적과 이야기가 전해오는 곳은 남경시 율수현과 양주이다. 12세의 어린 나이에 청운의 뜻을 품고 당나라에 유학한 최치원은 18세에 외국인을 상대로 치르는 시험인 빈공과에 장원으로 합격하게 된다. 최치원은 당나라의 과거시험에 합격한 2년뒤에 20세의 약관으로 관직에 처음 나서게 된다. 최치원이 처음으로 관직생활을 시작한 곳은 지금의 남경시 율수현이다. 876년에 율수현의 현위로 첫 관직에 오르며 본격적인 중국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지금 남경시 율수현에는 당시의 최치원의 행적을 기념하여 큼지막한 동상을 건립했다. 또 당나라 시대의 원형을 복원한 7층의 율수탑이 있는데 이탑 2층에 최치원을 기념하는 최치원실이 마련되어 있다. 최치원실에는 선생의 초상화와 함께 당시에 뛰어난 문장력을 발휘하.. 2015. 10. 5. 청도 학남서원 최치원 시제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psbcam&logNo=220190517159 청도에도 경주 최씨들이 제법 사는데, 통일신라 후기의 석학 최치원선생이 경주최씨의 시조이고 청도의 경주최씨는 관가정공파의 후손들이 주를 이루고 잇습니다. 경주최씨 문중에서 관가정공파, 그 중의 세부적인 파 속에서 또 나눠지다가 경산공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소 구조처럼 00시 00구 00동 00처럼 족보의 파도 세월이 흘러 오면서 세보가 나뉘어 집니다.. 예전에는 청도군 풍각의 봉기에 재실이 있었는데 오래되고 시제에 예전처럼 사람도 많이 모지지 않아 뜯어버리고, 현재는 고운 최치원선생의 영정이 모셔진 학남서원에서 선생의 제향과 더불어 시제를 병행해서 모시고 있습니다. 학남서원이 있는.. 2015. 10. 3. 이전 1 ··· 13 14 15 16 17 18 19 ··· 27 다음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