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최치원 관련 유적과 이야기가 전해오는 곳은 남경시 율수현과 양주이다.
12세의 어린 나이에 청운의 뜻을 품고 당나라에 유학한 최치원은 18세에 외국인을 상대로 치르는 시험인 빈공과에 장원으로 합격하게 된다. 최치원은 당나라의 과거시험에 합격한 2년뒤에 20세의 약관으로 관직에 처음 나서게 된다.
최치원이 처음으로 관직생활을 시작한 곳은 지금의 남경시 율수현이다. 876년에 율수현의 현위로 첫 관직에 오르며 본격적인 중국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지금 남경시 율수현에는 당시의 최치원의 행적을 기념하여 큼지막한 동상을 건립했다.
또 당나라 시대의 원형을 복원한 7층의 율수탑이 있는데 이탑 2층에 최치원을 기념하는 최치원실이 마련되어 있다. 최치원실에는 선생의 초상화와 함께 당시에 뛰어난 문장력을 발휘하면서 지은 시들이 전시가 되어있다.
<최치원과 쌍녀분 이야기>는 최치원이 율수현에서 겪은 일을 바탕으로 쓴 이야기로, 고려시대 설화집 <신라수이전>등에서 그내용이 전해져 오고 있다. 쌍녀분 이야기는 최치원과 죽은 여인들이 시문을 나누는 것을 핵심 내요응로 하고 있다. 최치원의 뛰어난 문장력이 죽은 두 여인과의 대화에서 잘 나타나 있다.
이야기의 줄거리를 보면 최치원은 지역 순방 중 부모님이 맺어준 혼인에 불만을 품고 자살한 두 여인이 묻혀 있는 야산의 무덤을 찾아냈다. 최치원은 그들을 위로하는 시를 지었고, 이에 감동한 혼령들이 최치원이 묵고 있는 객사를 찾아롸 회포를 풀었다는 이야기다.
남경시 율수현은 아름다운 경치로 인해 중국에서 최초로 슬로시티로 지정이 되었다.
자연과의 조화를 강조하는 생태농업을 통하여 친환경 농작물을 생산하고 있으며 이 고장의 주 수입원이 되는 것도 바로 생태관광이다.
최치원은 율수현위를 그만둔 후
양주의 당성에 근무하게된다.
최치원이 근무했던 당성은 회남 일대를 장악하고 있던 절도사 고변의 주둔지 였다. 이 무렵 황소의 난이 일어나 수도인 장안이 점령당하는 위기를 맞았는데 회남절도사 고변은 이 반란을 토벌하러가는 상황에서 최치원을 종사관으로 발탁했다.
이 때 최치원은 유명한 글 ‘토 황소격문’을 섰는데 황소가 이글을 읽다가 너무 놀라서 침상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고 한다. 당시 중국인들은 황소를 격퇴한 것은 칼이 아니라 최치원의 글이라고 하면서 그의 문장력을 크게 격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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