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보령의 최치원 유적으로는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의 비문과 최고운 유적을 들 수가 있다.
성주사는 백제 법왕 때 처음 지어졌는데 원래의 이름은 오합사였다. 이후 통일신라 문성왕 시기에 당나라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온 낭혜화상이 절을 크게 다시 일으키면서 이름을 성주사로 고쳤다.
성주사는 당시 통일신라에서 자장 규모가큰 대규모 사찰이었다. 최치원은 이 절을 중창한 낭혜화상이 돌아가신후 그의 공덕을 찬양하며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의 비문을 지었다. 낭혜화상비는 신라 석비 중 규모가 가장큰 작품인데 여기에서 최치원의 뛰어난 문장력이 다시 한번 크게 발휘가 되었다.
최치원은 보령시 남포면 월전리에 머무른 적도 있다. 선생은 이곳 병풍바위에 한시(漢詩)를 새겨 놓았는데 이것을 최고운 유적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아쉽게도 바위에 새겨진 글은 훼손이 심해서 내용을 알아볼수 없다는 점이 매우 안타깝다.
728x90
반응형
'장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상남도의 최치원 유적지 개발 (0) | 2015.10.07 |
---|---|
월영대..... 한국 유학의 연원지 (0) | 2015.10.05 |
군산--- 최치원 (0) | 2015.10.05 |
중국의 최치원 관련 유적 (0) | 2015.10.05 |
청도 학남서원 최치원 시제 (0) | 2015.1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