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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조선218

청자 철채 퇴화 잎무늬 매병 청자 태토로 매병 형태를 만든 후 철화(鐵畫) 안료를 칠하고, 다시 몸체 양면에 잎 무늬 부분만을 얇게 파낸 뒤 그 위에 백토(白土)를 바르고 청자유약을 입혀 구운 작품이다. 이처럼 여러 번 공정을 거치는 철채(鐵彩) 상감기법은 12세기 전반기부터 나타나고 있으나 그 예가 매우 드물다. 소담스러운 어깨의 곡선은 매우 유려하고 몸체에 그려진 잎 무늬에는 백토를 바른 붓질이 잎맥처럼 자연스럽게 남아 있다. 대담하게 내리그은 백색의 줄기 끝 부분과 철채한 흑색의 대조 또한 절묘하다. 흑(黑)과 백(白)의 대비와 소박한 잎 무늬의 표현, 백토를 바른 붓질에 운치가 배어난다. 굽 접지면에 내화토를 받쳐 구웠다. 이와 유사한 파편들이 강진 대구면 사당리 가마터에서 발견되었다. 출처; 국립중앙 박물관 2023. 8. 10.
반정으로 물러난 왕 광해군과 연산군 조선의 왕 중에서 반정으로 물러난 왕으로는 광해군과 연산군이 있습니다 광해군은 선조에 이어 즉위한 왕이고요 연산군은 성종에 이어서 즉위한 왕입니다. 광해군 시기에는 북인세력의 공안정치가 있었고요 연산군 시기에는 두 차례이 사화가 있었습니다. 광해군과 연산군은 반정으로 물러났기 때문에 정식 묘호도 받지를 못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전쟁을 지휘 했던 광해군 1592년부터 1598년까지 6년 간 일어났던 임진왜란 당시 전쟁을 지휘 했던 광해군은 왕위에 오른뒤에는 권력다툼에 휘말리게 되고요 이러한 가운데 형과 동생을 죽이는 패륜행위를 하면서 결국 자신의 인생을 실패로 몰고가게 됩니다. 광해군은 임진왜란이후의 어수선해진 나라의 분위기를 안정시키고 유교적인 이념을 확립하기 위해 동국신속삼강행실도를.. 2023. 7. 30.
조선의 태종 조선 제3대 왕 태종은 새 왕조 개창기에 많은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정도전 등에 의해서 견제되었는데요 제1차 왕자의 난을 계기로 재기에 성공한 이방원은 왕위에 오르는 과정이나 왕위에 오른 뒤 계속된 피의 숙청을 단행하였습니다. 조선 제3대 왕 태종은 다른 한편에서 보면 500년 조선조 국가 운영의 밑그림을 완성한 군왕이었습니다. 태종 이방원은 태조의 5남으로 어머니는 신의왕후 한씨입니다. 태종의 비는 민제의 딸 원경왕후 입니다. 이방원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정조사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오고, 1392년에는 고려 왕조의 존속을 강하게 주장하는 정몽주를 제거하였습니다. 태종 이방원 1392년에는 고려 왕조의 존속을 강하게 주장하는 정몽주를 제거 이성계가 조선의 태조로서 등극하자 정안군에 봉해 짐 제.. 2023. 7. 30.
조선시대의 악장과 시조 ●용비어천가 조선 세종 때 지어진 용비어천가는 선조인 목조에서 시작하여 3대왕인 태종 이르는 여섯 대의 행적을 노래한 서사시입니다. 용비어천가에는 2대왕인 정종을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용비어천가의 편찬에 참가한 인물은 권제와 정인지를 비롯하여 안지, 박팽년, 강희안, 신숙주, 이현로, 성삼문, 이개, 신영손입니다 용비어천가가 완성된 후 서문을 지은 사람은 집현전 대제학인 정인지입니다. 용비어천가의 제1장은 전체의 서문에 해당되고요 제2장은 모든 일은 반드시 그렇게 될 만한 까닭이 있음을 물과 나무에 비유하여 강조한 것입니다 용비어천가의 편찬에 참가한 인물 권제, 정인지 안지, 박팽년, 강희안, 신숙주, 이현로, 성삼문, 이개, 신영손 용비어천가의 제2장은 전체내용 중에서 핵심이 되는 부분이라고 하겠습.. 2023. 7.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