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제3대 왕 태종은 새 왕조 개창기에 많은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정도전 등에 의해서 견제되었는데요
제1차 왕자의 난을 계기로 재기에 성공한 이방원은
왕위에 오르는 과정이나 왕위에 오른 뒤 계속된 피의 숙청을 단행하였습니다.
조선 제3대 왕 태종은 다른 한편에서 보면
500년 조선조 국가 운영의 밑그림을 완성한 군왕이었습니다.
태종 이방원은 태조의 5남으로 어머니는 신의왕후 한씨입니다.
태종의 비는 민제의 딸 원경왕후 입니다.
이방원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정조사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오고,
1392년에는 고려 왕조의 존속을 강하게 주장하는 정몽주를 제거하였습니다.
태종 이방원 |
1392년에는 고려 왕조의 존속을 강하게 주장하는 정몽주를 제거 |
이성계가 조선의 태조로서 등극하자 정안군에 봉해 짐 |
제1차 왕자의 난 이후 세자로 추대되었으나 이를 형인 방과에게 사양 |
1392년에 이성계가 조선의 태조로서 등극하자 정안군에 봉해졌습니다.
이방원은 제1차 왕자의 난 이후 세자로 추대되었으나 이를
형인 방과에게 사양하였는 데요 방과가 조선의 2대왕인 정종입니다.
태종의 억불숭유 정책 |
전국의 많은 사찰을 폐쇄 |
페쇄된 사찰에 소속되었던 토지와 노비를 몰수 |
태종은 불교를 억압하고 유교를 숭상하는 억불숭유 정책을 강화하여 전국의 많은 사찰을 폐쇄하였고요
페쇄된 사찰에 소속되었던 토지와 노비를 몰수하였습니다.
이외에 사상의 통제를 강화하면서 미신타파에 힘썼습니다.
태종은 신분증명패인 호패를 차고 다니도록 하는 호패법을 실시하였는 데요
호패를 양반, 관리에서 농민에 이르기까지 국민 모두가 이를 소지하게 함으로써 인구의 통태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가 있었습니다.
조선 태종의 업적 | |
호패법을 실시 | 신분증명패인 호패를 차고 다니도록 함 |
여진족 토벌 | 여진을 토벌하는 동시에 노략질이 심한 여진인들을 회유 |
역사서 편찬 | 하륜등에게 역사서인 동국사략과 고려사 등을 편찬하게 함 |
경제정책 | 종이로 만든 지폐인 저화를 발행 |
태종때에는 북방의 여진족 토벌에도 나섰는 데요 여진을 토벌하는 동시에
노략질이 심한 여진인들을 회유하기도 했습니다.
태종은 활자 제조에도 많은 힘을 기울였는데요 주자소를 세워 구리활자인 계미자를 만들었습니다.
계미자는 조선 태종 3년인 1403년 계미년에 만든 활지인데요
조선 시대 최초의 구리 활자이기도 합니다.
금속 활자는 이미 고려 시대에 있었지만 본격적인 금속활자를 만든 것은 조선 태종 때입니다.
계미자는 조선 시대 처음 만들어진 활자이고 이후의 활자주조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됩니다.
태종의 활자 제조 |
주자소를 세워 구리활자인 계미자를 만듬 |
계미자--- 조선 시대 처음 만들어진 활자 |
이외에 하륜등에게 역사서인 동국사략과 고려사 등을 편찬하게 하였습니다.
태종은 경제정책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 종이로 만든 지폐인 저화를 발행하여 경제유통이 잘 되도록 하였습니다.
태종은 1404년에 수도를 송도에서 한성으로 천도하였습니다.
이후 1418년에는 세자인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서 국정을 감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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