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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조선

반정으로 물러난 왕

by 산골지기 2023.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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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과 연산군

조선의 왕 중에서 반정으로 물러난 왕으로는 광해군과 연산군이 있습니다

광해군은 선조에 이어 즉위한 왕이고요 연산군은 성종에 이어서 즉위한 왕입니다.

광해군 시기에는 북인세력의 공안정치가 있었고요 연산군 시기에는 두 차례이 사화가 있었습니다.

광해군과 연산군은 반정으로 물러났기 때문에 정식 묘호도 받지를 못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전쟁을 지휘 했던 광해군

1592년부터 1598년까지 6년 간 일어났던 임진왜란 당시 전쟁을 지휘 했던 광해군은

왕위에 오른뒤에는 권력다툼에 휘말리게 되고요 이러한 가운데

형과 동생을 죽이는 패륜행위를 하면서 결국 자신의 인생을 실패로 몰고가게 됩니다.

광해군은 임진왜란이후의 어수선해진 나라의 분위기를 안정시키고

유교적인 이념을 확립하기 위해 동국신속삼강행실도를 편찬했습니다.

동국신속삼강행실도의 삽화

 


광해군

임진왜란 당시 전쟁을 지휘

대동법을 처음으로 실시

동국신속삼강행실도 편찬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실리 외교

동국신속삼강행실도는 충신들의 비중을 매우 높인 서적입니다

동국신속삼강행실도는 광해군이 1613(광해군5) 찬집청을 설치하고

유근 등에 명하여 편찬된 유교주의의 보급과 실천을 위해 엮은 1818책으로 일종의 국민 교화서이다


허준의 동의보감이 완성된 시기도 광해군 시대입니다.

동의보감은 원래 선조때에 집필을 하였지만 완성을 보지 못하였고

광해군 시기에 완성이 되게 됩니다.

광해군 시기에 완성이된 동의보감

임진왜란을 치르며 조선의 미미한 의학 수준을 경험한 광해군은

허준이 동의보감을 편찬하는 데에 많은 지원을 했습니다.


광해군 일기에는 위태로워 죽기 직전에 있는 백성들을 보살펴 주지 않는다면

백성의 부모 된 도리가 아니다.라는 말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조선의 열악한 의료 환경을 개선하기 위하여 광해군은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연산군

조선 제10대 왕인 연산군은 1494년부터 1506년까지 재위를 하였습니다.

연산군은 12년에 걸친 재위기간 동안 두 번의 사화(士禍)를 일으키면서 폭압적인 정치를 하였습니다.

이러한 폭압정치로 인하여 중종반정이 일어났고요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은 폐위되었습니다.

중종반정은 훈구세력인 성의안과 박원종 등이 연산군을 폐하고

이복동생인 진성대군을 왕으로 추대한 사건입니다.

중종반정을 통하여 연산군이 폐위가 되면서 진성대군이 중종이 되게 됩니다.

 연산군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키면서 폭정을 하였기 때문에

훈구세력을 중심으로 연산군의 폐위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고

성희안과 박원종 등이 반정을 일으키게 됩니다

연산군에세는 국왕에게 부여되는 이 아닌 이라는 묘호가 붙여졌습니다.

향락을 좋아한 연산군은 각 도에 채홍사를 파견해서 미녀와 양마(良馬)를 구해오게 하였습니다.

이외에 연산군은 성균관을 놀이터로 삼았고요 한성부 내에 있는 사찰을 연회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연산군 시기에 있었던 사화
무오사화
갑자사화

연산군 시기에 있었던 주요 사건들로는

무오사화와 갑자사화가 있는데요

무오사화는 김종직의 사초가 원인이 되어 일어났고요

갑자사화는 연산군의 어머니인 윤비사건과 관련하여 일어난 사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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