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 역사/고려140

공민왕의 개혁 원나라의 간섭으로 인해 고려의 신분 구성에는 큰 변화가 나타났다. 낮은 신분이었던 통역관이나 매사냥을 하던 사람들 혹은 원나라 왕실이나 고관의 아내가 된 공녀의 친척들이 원나라와의 친분을 이용해 큰 세력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성장한 가문들은 고려 초기의 문벌귀족과 무신정권기에 등장한 귀족들과 함께 권문세족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들은 국정을 총괄하는 도평의사사를 통해 권력을 행사하였으나 학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여 전대의 문벌귀족과는 판이한 성격을 띠었다. 그러나 농민들의 토지를 강탈하여 거대한 농장을 소유하고, 양민을 억압해 노비로 삼는 전횡은 문벌귀족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권문세족들로 인해 나타난 인사권의 문란과 대규모 농장의 폐단을 시정하기 위한 노력은 충선왕 때부터 있었지만, 원 간섭기에 친원세.. 2016. 10. 10.
과거제 고려의 과거제는 무과가 없었고 조선의 과거제는 무과가 있었습니다 고려의 과거제도는 후주인(後周人) 쌍기(雙冀)의 건의로 958년(광종 9) 당나라 제도를 모방하여 창설하였고, 성종(成宗) 때 합격자를 우대하였다. 초기의 과거시험은 제술과(製述科:進士科)·명경과(明經科)·잡과(雜科:醫卜科)를 두었으며, 1136년(인종 14)에 이르러 정비되었다. 제술과와 명경과는 문관 등용시험이었으나, 제술과를 더욱 중요시하였다. 고려시대를 통하여 제술과의 합격자 수가 6,000여 명이나 되는데 비해 명경과 합격자는 450명 정도인 것으로도 알 수가 있다. 이 점은 당시의 귀족들이 경학(經學)보다 문학을 숭상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잡과는 위의 양과 보다 그 격이 낮았다. 이 밖의 과거에는 승과(僧科:敎宗試와 禪宗.. 2016. 10. 9.
고려시대 역사책 고려시대에는 역사책이 많이 기록이 되었는데요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고려 인종때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입니다. 이후 고려후기에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했고 이승휴가 제왕운기를 저술했습니다. 《 삼국유사》(三國遺事)는 고려의 승려인 일연(一然)이 고려 충렬왕 7년(1281년) 에 인각사(麟角寺)에서 편찬한 삼국 시대의 역사서이다. 2003년에 조선 초기의 간행본과 중종 임신본이 각각 대한민국의 국보 제306호와 제306-2호로 지정되었다. 삼국유사에는 삼국과 가락국(駕洛國 : 가야)의 왕대와 연대, 고조선 이하 여러 고대 국가의 흥폐·신화·전설·신앙 및 역사, 불교에 관한 기록, 고승들에 대한 설화, 밀교(密敎) 승려들에 대한 행적, 고승들의 행정, 효행을 남긴 사람들의 이야기 등이 수록되어 있다. 삼국유사에.. 2016. 9. 30.
몽골의 고려에 대한 침략 계획 고려가 최씨의 무단정치(武斷政治) 하에 있는 동안 중앙아시아 대륙에서는 테무친이라는 사람이 나와 몽골족을 통일하고, 1206년(희종 2년)에는 칭기즈 칸이라 칭하고 강대한 제국(帝國)으로 군림하였다.[1] 그는 세계를 정복할 목적으로 동·서양의 각국을 공격하여, 세계 최대의 제국을 건설한 다음 남하하여 금나라를 공격하니 금은 대내적인 분열을 일으켰다. 요나라 유민의 일부분은 대요국(大遼國)을 세우고 여진족과 화합하여, 재기의 기회를 노렸으나 다시 몽골에 쫓기어 1216년(고종 4년)에는 마침내 고려의 국경을 넘어서게 되었다. 이에 몽골은 여진족의 동진국(東眞國)과 동맹을 맺고, 거란족을 소탕하기 위하여 고려에 들어오자 고려도 군사를 동원하여 그들과 협력하여 강동성에서 거란을 무찔렀다(→강동성 전투). 몽.. 2016. 9.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