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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고려140

왜구 왜구는 말 그대로 틈만 있으면 우리 해안에 나타나서 약탈행위를 일삼았는데요 우리나라의 허점이 많을수록 침략 횟수가 많았습니다. 조선시대에는 1년에 10번 조선 침공, 고려시대에는 1년에 50번 고려해안에 나타나서 우리를 괴롭혔습니다. 왜구의 침탈이 가장 극심했던 시기는 고려말인데요 이때에는 왜구침략의 너무 극심해서 수도를 개성에서 철원으로 옮겨야한다는 의견까지 나올 정도 였습니다 고려말에는 왜구 침략에 공을 세운 이성계가 최영등이 신흥 무인세력으로 많은 활약을 하게 됩니다 왜구는 통상적으로 고려와 원나라의 연합군이 일본 열도 침략에 실패한 이후인 13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한반도와 중국 대륙의 연안부나 일부 내륙 지역을 약탈하고 밀무역을 행하던 무리를 가리킨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왜구는 존재했다는 기.. 2018. 9. 16.
팔만대장경과 초조대장경 팔만대장경은 초조대장경이 거란의 침입후에 불탄것을 다시 만든것입니다 팔만대장경이랑 초조대장경이랑은 다른것인데요 팔만대장경은 초조대장경이 소실된이후에 다시 만들었닥 해서 원래 이름은 재조대장경입니다 ---초조대장경은 고려 시대 현종 때 만든 고려 최초의 대장경이다. ---고려는 불교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해 초조대장경을 제작하였다 고려대장경은 고려 때 외침을 막고자 간행한 불경이다. 간행 횟수는 대장경 2회와 속대장경 1회까지 합하여 총 3회이다. 고구려를 기억하려는 의미로 정하여진 국호, 고려는 남조(통일 신라)의 전통을 거의 그대로 이은 귀족 문화를 가졌으며, 북방의 북조(발해)의 성립과 별도로, 후삼국을 군사적 대립과 복속으로 통일하였기 때문에, 문반과 무반의 차이를 문화의 특징으로 규정.. 2018. 4. 15.
쌍성총관부와 동녕부 쌍성총관부는 1258년에 동녕부는 1269년에 설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강화도에서 몽고에 항복한 이후 개경환도가 이루어진것은 1270년 입니다 쌍성총관부--- 철령이북 지역을 지배, 공민왕때에 회복 동녕부--- 서경에 설치, 자비령 이북 지역을 지배 1269년(원종 10년) 서북면 병마사의 기관(記官)인 최탄(崔坦) 등이 난을 일으켜 서경을 비롯한 북계(北界)의 54성과 자비령(慈悲嶺) 이북 서해도(西海道)의 6성을 들어 원나라에 투항하였다. 1270년(원종 11년) 쿠빌라이 칸은 자비령 이북의 영토를 직속령으로 모두 원나라에 편입하고 서경에 동녕부를 설치한 후, 최탄을 동녕부 총관에 임명하였다. 이에 고려 원종은 원나라의 수도 대도(大都)로 입조하여 쿠빌라이 칸에게 자비령 이북 지역의 반환을 요구하였.. 2018. 3. 31.
부석사 봉황산 중턱에 있는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화엄의 큰 가르침을 펴던 곳이다. 무량수전 뒤에는 ‘부석(浮石)’이라고 새겨져 있는 바위가 있는데, 『삼국유사』에 있는 설화를 보면,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묘가 용으로 변해 이곳까지 따라와서 줄곧 의상대사를 보호하면서 절을 지을 수 있게 도왔다고 한다. 이곳에 숨어 있던 도적떼를 선묘가 바위로 변해 날려 물리친 후 무량수전 뒤에 내려 앉았다고 전한다.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중심건물로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다.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 때 짓고 고려 현종(재위 1009∼1031) 때 고쳐 지었으나, 공민왕 7년(1358)에 불에 타 버렸다. 지금 있.. 2018. 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