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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고려140

속장경 속장경은 교장으로도 부르는데요 《교장》은 부처님의 말씀인《대장경》이 아닌, 여러 불교 교파의 교리를 정리한 장서이다. 이전의 초조대장경의 주석도 포함되어 있기에, 《속대장경(續大藏經)》 또는 《의천의 속장경》이라고도 부릅니다. 속 장 경 여러 불교 교파의 교리를 정리한 장서 대각국사 의천이 송나라에 다녀오면서 수집해 온 불서 · 불경과 요나라·일본에서 수집한 것을 모아서 4,700여 권을 수집하였다. 1073년(문종 27)부터 1090년(선종 7)까지 수집한 불경의 총 목록을 작성하여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이라 했다. 이 목록에 따라 차례대로 목판에 새겨 만들었다. 흥왕사(興王寺)에 교장도감을 두고 1096년(숙종 1)에 완성하였습니다. 이는 모두 1,010부 4,740여 권이며, 대구 부.. 2017. 7. 25.
묘청 묘청은 현재의 평양인 서경에서 출생했다. 그의 출생과 속성, 출가한 사찰 등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평양 출신으로 어려서 승려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불교 교리 외에도 도교의 비의에도 능통했는데, 1126년(인종 4)에 백수한(白壽翰)이 검교소감으로 서경에 파견되자 묘청을 스승이라 하고, 두 사람은 음양비술을 사용하면서 백성들을 현혹시켰다고 한다. 또한 당시 고려 사회에는 신라 말기 이래 풍수지리설이 크게 성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묘청 등의 주장은 큰 호소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유교를 신봉하는 관료들의 사대적이고 유약한 태도를 비판하면서 칭제건원, 즉 중국처럼 왕을 황제라 부르고 연호도 중국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풍수지리사상에 입각하여 개경은 이미 지세가 다 했고, .. 2017. 7. 10.
원의 간섭 원은 고려의 영토 중 철령 이북 지역에는 쌍성총관부, 서경에는 동녕부, 제주에는 탐라총관부를 두어 직접 통치하였다. 아울러 일본 원정을 위한 물자와 군인 등을 고려에 요구하였다. 원은 일본 원정에 실패하였으나, 원정을 위해 설치하였던 정동행성을 그대로 두어 고려의 내정을 간섭하는 기구로 삼았다. 또한, 원은 고려에 공녀와 환관을 비롯한 금, 은, 베, 인삼, 매 등을 요구하였다. 이 때문에 고려 정부의 부담이 늘고 농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졌다. 고려의 정치도 원의 압력과 친원 세력의 횡포 등으로 비정상적으로 운영되었다. 원과 고려간의 양국의 교류는 고려 사회의 다양성을 확대시키는 데 기여 원 간섭기 고려에는 몽골, 중국, 위구르 출신의 다양한 사람들이 왔으며, 많은 고려인이 유학 공부, 불교 교류, 이주 .. 2017. 6. 20.
원의 간섭을 받은 고려 고려는 1231년(고종 18)부터 몽골의 침략을 받아 약 30년 동안 항전을 벌인 뒤 1259년(고종 46)에 강화를 맺었다. 이후 1356년(공민왕 5) 공민왕의 반원운동이 성공할 때까지 원의 간섭을 받았다. 원간섭기(元干涉期)는 고려의 대몽항쟁이 끝나고 원의 간섭을 받기 시작했을 때부터 반원운동에 성공하여 원의 간섭에서 벗어났을 때까지이므로 일반적으로는 1259년부터 1356년까지 97년간의 시기를 가리킨다. 일부에서는 1270년(원종 11) 무신정권이 붕괴되고 개경환도가 이루어질 때까지 고려의 대몽항쟁이 계속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1273년(원종 14) 제주도에서 삼별초(三別抄)가 진압된 때를 대몽항쟁의 종료 시점으로 보기도 한다 2017. 5.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