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고려140 삼별초 삼별초는 몽골과 강화가 이루어지자 이에 반발하여 1270년(원종 11)에 반란을 일으켰는데 독자적으로 정부를 세우고 정부와 원에 대항하여 진도를 본거지로 삼아 3년 동안 싸우게 됩니다. 이후 여몽연합군에 의해서 진도가 함락되고 배중손이 죽으면서 남은 세력은 제주도로 이동을 하게 되비다. 그러나 김통정의 지휘하에 제주도에서 항쟁하던 삼별초는 1273년 고려 · 몽골 연합군의 공격으로 섬멸되게 됩니다 삼별초 항쟁사 보여주는 유물 : 주간동아옅은 안개가 낀 2015년 10월 19일, 고무보트를 타고 ‘김준의 배’라 부르는 ‘마도3호선’ 발견 지점인 충남 태안 마도 앞바다를 찾았다. 마도3호선은 2011년 5월 발굴된 고려시대 선박으로, 남해안 여수 등지에서 출발해 고려 임시수도 강화도로 가는 길이었다. 육지와.. 2017. 5. 8. 제위보 고려시대 제위보는 서민들의 구료사업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설치되었는데 ‘보’라는 것은 기본재단의 이식으로 사업을 영구히 계속할 수 있는 고려시대의 관설재단의 공식명칭 입니다. 제위보는 963년(광종 14년)에 설치되어 잉여 곡식이나 돈을 비축했다가 대출해주어, 그 변리를 가난한 사람이나 의지할 데 없는 나그네를 구호하고 질병을 치료해 주는 데에 사용하였습니다. 남녀 차별, 남자끼리의 차별 :: 한국의 미래를 바꾸는 대안 미디어!tntnews.co.kr 2017. 4. 20. 원간섭기 기간 원간섭기는 고려의 대몽항쟁이 끝나고 원의 간섭을 받기 시작했을 때부터 반원운동에 성공하여 원의 간섭에서 벗어났을 때까지이다. 1259년부터 1356년까지 97년간의 원간섭기 기간 일반적으로는 1259년부터 1356년까지 97년간의 시기를 가리키지만 일부에서는 1270년(원종 11) 무신정권이 붕괴되고 개경환도가 이루어질 때까지 고려의 대몽항쟁이 계속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좀더 넓게 봐서는 1273년(원종 14) 제주도에서 삼별초(三別抄)가 진압된 때를 대몽항쟁의 종료 시점으로 보기도 한다 2017. 4. 15. 고려의 신분 고려의 신분을 4가지로 구분해 본다면 최고위층인 귀족을 비롯하여 중류층, 평민,천민으로 구분을 할수가 있습니다. 고려는 보통 문벌귀족사회라고 하는데요 지배층은 탄탄한 집안세력을 바탕으로 하는 문벌귀족이었습니다. 강한 문벌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왕실과 혼인관계를 맺어야 했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이자겸의 집안입니다. 이자겸은 자신의 딸 3명을 왕실과 혼인시키기도 하였습니다. 다음으로 서리, 향리, 남반등으로 이루어진 중류층이 있었고요 다음으로 평민,천민이 있었습니다 2017. 2. 22. 이전 1 ··· 13 14 15 16 17 18 19 ··· 3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