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고려140 고려 시대 무역 고려 시대에는 벽란도를 중심으로 중국 송나라를 비롯한 여진, 거란, 동남아시아, 아라비아 등 여러 나라와 무역을 했습니다. 서양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코리아(KOREA)’라고 부르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는데요 ‘고려’라는 나라 이름이 여러 나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그렇게 불리게 된 것입니다 2018. 12. 19. 이성계--- 고려말엽에 활약한 신흥무인 세력 이성계는 고려말엽에 활약한 신흥무인 세력 입니다. 당시 북쪽에서는 홍건적이 자주 침입 하였고 남쪽에서는 왜구가 침략하는 상황에서 이성계는 홍건적과 왜구를 격퇴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면서 세력을 키우게 됩니다. 이성계는 북으로부터 침입해 오는 나하추 세력을 물리치고, 남으로 침략해 오는 왜구를 토벌하는 데 크게 공을 세워, 국민의 두터운 신망을 받았습니다 원을 몽고 지방으로 몰아 낸 명은, 한때 원이 지배하였던 철령 이북의 땅을 그들에게 넘겨 줄 것을 요구하였다. 고려에서는 최영 등이 이를 거절하고, 이 기회에 명이 차지한 요동 지방까지 수복하려 하였다. 당시 국내외의 사정을 이유로 요동 공격을 반대하였던 이성계는, 출정 도중에 위화도에서 군사를 돌려 개경으로 돌아와 반대파를 몰아냈다 매출 대비 순수익 5.. 2018. 11. 20. 이자겸의 사대외교 이자겸의 사대외교 고려는 인종 4년 3월에 개최된 백관회의에서 금에대한 사대외교를 결정하게된다. 백관회의의 결정에 따러서 동북9성은 여진족에게 돌려주게 되고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등장한 이자겸은 여진에 대한 사대외교를 펼치게 된것이다. 이자겸은 송나라가 문치주의로 국방이 약한 상황인데 반해서 금나라는 상승하는 매와 같다는 의견을 보이면서 여진에 대한 강경책 보다는 여진의 세력에 굴복하는 사대외교정책을 펼치게된다. 예종의 외척 이자겸--- 여진에 대한 사대외교 전개 당시 금에 대해서 사대외교로의 선회하는 과정에서는 실리외교를 추구한다는 주장을 표면적으로 내세웠지만 내부적으로 보면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많이 작용을 하고 있다. 이자겸일파의 속셈은 대금강경책이 필연적으로 가져올 왕권강화 정국을 맏아보자는 의도가 .. 2018. 11. 19. 팔만대장경 팔만대장경은 고려 고종때에 몽고의 침입을 불교의 힘으로 물리치기 위하여 제작이 되었습니다. 당시 강화도에서 제작된 팔만대장경은 지금은 경상남도 합천 해인사로 옮겨져 있고요 현재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이 되어 있습니다 고려에서 처음으로 판각한 대장경은 11세기 초 현종(顯宗, 재위 1009∼1031) 대 새긴 초조대장경(初彫大藏經)이다. 여기에 11세기 말 의천(義天)의 주도로 판각된 속장경(續藏經)이 현종 대의 대장경 경판과 함께 대구 부인사(符仁寺)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1232년(고종 19) 몽골군의 침입으로 모두 불에 타 버렸다. 이에 당시 집권자인 최우(崔瑀) 등의 발의로 다시 판각한 것이 팔만대장경이다. 대장경판을 새긴 것은 부처의 힘으로 몽골군의 침입을 물리치고자 하는 염원에서 비롯되었다. 고.. 2018. 11. 7. 이전 1 ··· 7 8 9 10 11 12 13 ··· 3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