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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교회사 연구소

구한말 기독교 배경

by 산골지기 2015.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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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한말(1900~1910) 우리나라의 정국은 복잡다단하고 험악했으나, 기독교는 그 가운데 조용한 내적 성장을 이뤄가고 있다.

 

 

   먼저 교회는 성서 번역작업을 계속하는 한편으로 찬송가 편찬, 예배의식 제정 등 기본사업에 열중했다. 1900년에는 3단계 작업과정을 거친 순수 한글신학성서를 완역 출간했으며, 1892년에는 아펜젤러가 악보없는 찬송가를 번역해 출간했다.


   또 문서사업을 위해 1895년 대영성서공회는 한국 지부를 공식 개설했고, 이전 1890년에는 조선성교서회(현 대한기독교서회 전신)이 창설되 '성교섭리' '인가귀도' '그리스도 문답' 게일의 '천로역정' 헐버트의 '사민필지' 등이 번역되 널리 읽혀졌다.


   초창기 신학교육을 이끈 것은 감리교회였으며, 1896년부터는 '신학회'를 조직해 서울과 인천, 평양 등 사경회에서 신학이론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1900년 하디(OR.A.Hardie) 최병현 등이 '신학월보'를 펴내기도 했다.


   또 헐버트(H.B.Hulbert), 질레트(L Gillett) 등은 1903년 10월 28일 황성기독교 청년회를 창설했다. 이사로는 김필수 여병현이었다.

 

1904년 3월 12일 옥고를 치르고 있던 이상재 김정식 등 독립협회 관계자들이 석방되 연못골 교회(오늘날 연동교회)에 입교하는 동시에 청년회에 집단가입 했다.

 

 평신도 운동으로서 독립협회운동은 황성기독교 청년회로 맥이 이어져 기독교적인 인권과 민권운동의 전통을 계승하는 동시에 권민과 서민들에게만 보급되던 복음이 지식인과 상류층에 깊이 뿌리 박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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