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출생한 그는 토론토 대학 의과대학에 재학 중 열풍처럼 번지던 ‘대학생 선교 자원운동’을 접하고 선교사로 지원했다.
처음 그는 캐나다 대학 기독교청년회 자김 지원으로 1890년 내한한 후, 교파 소속 없이 서울과 부산, 원산 등지에서 의료활동을 벌인다.
1896년에 이르러 캐나다 대학생들이 보내주는 선교비가 중단되 캐나다로 돌아가야 할 위기에 처했으나 개성에 병원을 두고 있던 남감리회에서 그를 받아들임으로 이 때부터 남감리회 소속이 됐다. 초기에는 의료활동에 전념했으나, 1898년 원산으로 옮긴 후 병원보다는 교회를 돌아보면서 전도와 목회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태백산맥이 가로지르는 함경도와 강원도 산악 지역에서 전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고, 눈에 띄는 선교결실도 맺지 못했다. 또 기대만큼 따라오지 못하는 한국인들에게 실망만 더해갔다.
1903년 8월 원산에 있던 감리교와 장로교 선교사들이
중국에서 활동하던 중 휴가차 원산에 들른
감리교 여선교사 화이트(M.C.White)의 제안으로
기도와 성령체험에 대한 토론으로 진행되는
성경공부 모임을 갖게된다.
하디는 이 모임에서 강력한 성령의 임재를 체험한다.
“성령께서 내게 임하시어 첫 번째 명하신 것은 선교사 생활의 대부분을 할애했던 사람들 앞에서 내가 실패했다는 사실과 실패한 원인을 밝히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참으로 괴롭고도 창피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를 선하다 하셨으니 이는 오늘날 보다 많은 사람들을 구하려 하심이라’ 지난 수년간 나는 한국인들에게 죄를 자백하게 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보여 주도록 강조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이 때까지는 내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관련해 지속적이고도 빈틈愎?회개, 고통을 수반한 회개를 한 적은 없습니다”
하디는 성령체험을 한 다음 주일, 낮 예배시간에 원산교회 회중들 앞에서 자신의 오만과 불신을 공개적으로 자복했다.
한국인 회중들에게는 이것이 충격으로 다가왔고, 이 때부터 원산에서 모이는 집회마다 공개적인 회개운동이 일어나 선교사와 교인들 모두에게 성령충만한 영적 갱신의 역사가 일어난다.
하디의 변화는 다른 선교사들에
영향을 주었고 한국을 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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