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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교회사 연구소

하디와 평양

by 산골지기 2015.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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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봄에도 원산 집회는 반복되었다.

 

감리교, 장로교, 침례교의 연합 사경회 중 장로교의 로브(A. F. Robb) 목사가 특별한 감회에 젖어 한국인으로서 역시 은혜에 접한 전계은과 함께 원산 거리를 누비며 가슴을 치면서 통회하며 전도했고, 감리교의 정춘수 역시 원산 거리를 왕래하면서 감격과 열의로 이 성령의 은사를 선포하였다.

 

 

평양의  선교사들은 하디를

 초청하여 집회를 가졌다.

 

 시련의 때에 선교사 자신들의 선교 태도에 불명료와 주저의 기색을 스스로 자책하면서 진행된 이 집회에 웨일즈와 인도 지방에서의 놀라운 부흥의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북받치는 성령의 은사에 대한 갈망이 평양 교회의 언저리에 짙게 깔려가고 있었다. 사경회의 영향, 국가의 비운에 통회하는 기독교인의 내성(內省), 하나님의 도움밖에는 기댈 곳이 없다는 신앙에서 이 부흥의 물결은 도도히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1906년 8월, 평양의 선교사들은 하디를 초청하여 집회를 가졌다. 시련의 때에 선교사 자신들의 선교 태도의 불명료와 주저하는 기색을 자책하면서 진행된 이 집회에 웨일즈와 인도 지방에서의 놀라운 부흥의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북받치는 성령의 은사에 대한 갈망이 평양 교회의 언저리에 짙게 깔려가고 있었다.

 

 사경회의 영향, 국가의 비운에 통회하는 기독교인의 내성(內省), 하나님의 도움밖에는 기댈 곳이 없다는 신앙에서 이 부흥의 물결은 도도히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성령운동의 극치는 1907년 1월 평양에서 열렸던 대사경회에서 일어났다.

 

 사경회는  성서 연구에 주력하였다.

 

그런데 저녁 집회는 특별한 전도설교에 집중하였다. 바로 이 저녁 집회 때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저녁 집회에는 1,500명이 모였다.

 

1월 14일 월요일 저녁 집회에 성령의 역사가 임하였다. 이 저녁 집회는 리(Graham Lee) 목사가 인도하였다.

 

 

 

 

 

 

 

 

그가 두세 사람에게 기도를 하라고 요청하였을 때에 수십 명이 자연적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미 모두가 기도를 하고 싶은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이때에 리 목사는 다 같이 통성기도를 할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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