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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교회사 연구소

1907년 원산 부흥운동

by 산골지기 2015.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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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초대 선교사들은 대부분 ‘학생외지선교단’의 영향을 받았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 YMCA에서 파송받은 게일(J.S.Gale)은 직접 무디가 주재했던 마운트 허면 학생하령회에 참석한 사람이며, 그의 동생 하디(Hardie 1865~1949) 역시 그런 분위기 가운데 성장해 1890년 9월에 내한, 처음에는 선배 게일과 같이 부산에 있다가 서울을 거쳐 원산에 갔다.

 

 

그는 그곳에서 1898년부터 남감리교 선교사로 교적을 옮겨 의료사업에 종사했다.


   그는 1899년 부터는 원산과 강원도 통천지방 개척선교사가 되어 3년간 전도했으나 사사건건 실패했고, 이런 실패와 좌절감이 새로운 신앙체험의 계기가 되어 1903년 하디는 원산 성령강림 운동의 제일인자가 된다.


   제2의 인물도 캐나다 선교사로, 1901년 입국한 캐나다 장로회 소속 선교사 립(A.F.Robb, 1872~1935)이다.

 

그는 원산을 포함한 함경북도 전역과 간도지방을 캐나다 선교구역으로 배정받고 원산에 정착, 창전예배당(후 광석동교회) 교우들과 함께 기도에 힘썼다. 제3의 인물 역시 캐나다 선교사인 펜워크(Malcolm C. Fenwick 1861~1935)로, 그 역시 ‘학생외지 선교자원단’ 운동의 영향으로 1889년 내한, 처음에는 독립선교사로 활동했으나 침례교 소속 선교사가 되어 1899년부터는 원산에 정착해 자립전도에 힘썼다.


   제4의 인물도 캐나다 출신 여선교사인 매컬리(Louise H.McCully 또는 이부인 1864~1945)로 미혼인 그녀는 본디 중국 선교사로 갔으나 1900년 의화단의 난을 피해 한국에 입국, 한 해 전에 입국한 푸트(W.R.Foote) 그리어슨(Robert Grierson) 맥레(Duncan M.Macrae) 등 캐나다 선교회에서 정식으로 파견된 3인과 합류했다.


   원산에는 미국 남감리교 미국 침례교 캐나다 장로교 선교회에 속한 캐나다 출신 선교사들의 크리스천 공동체가 형성됐는데, 1903년부터 시작된 기도모임은 매컬 리가 제일 먼저 선교사업을 위해 중국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매일 기도회를 가지는 것으로 진행됐다. 이 기도회가 발전해 원산에는 동료 선교사들과 함께 매년 정기 사경회(Annual Bible Conference)가 열렸으며, 1904년에는 미국 남감리회 소속의 하디가 인도자가 되어 자신의 선교사업 실패의 원인은 믿음이 약해 성령강림의 체험이 없는데 있었다는 것을 고백하게 된다. 이는 부흥운동의 불을 지핀다.


   하디 선교사의 1902년 선교보고를 살펴보면 자신의 신앙에 대한 좌절로 가득했다. 그러나 1903년 보고에는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1904년 보고에는 확신에 가득찬다. 더 구체적으로, 1902년 보고가 한국인들에 대한 실망과 정죄로 가득차 있다면, 1903년 보고에는 변화의 조짐이 보였고 1904년 보고에는 성령의 임재로 이뤄진 내적 변화에 대한 감격으로 가득차 있다. 실망이 희망으로 바뀌고 좌절이 감사로 변하는 감격의 생활을 가능케 만든 요인은 1903년 ‘원산부흥운동‘에 기인한다. 이 운동은 원산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확산된 초기 한국 부흥운동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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