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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교회사 연구소

부산과 대구 선교

by 산골지기 2015.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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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는 두곳의 선교ststion이 있었다.

 

좌천동에 호주 선교회, 염주동에는 미 북장로교의 선교 station이 있었다. 미 북장로교를 통해서 전도가 이루어지고 1894년에 초량교회가 최초로 설립되었다.

 

 배위량(Baird) 선교사는

부산의 선교기지를 마련한 후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경상도 북부지방에

 관심을 가지고 낙동강을 따라서 대구까지 갔다.

 

 그는 1895년까지 부산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서울로 이동을 한다.

그후 1895년에 Adams가 왔다. 이년을 봉사한다. 그가 올 때 3개월이었던 그의 아이는 안두완 선교사이다. 대구에서 활동을 했다.

 

 북장로교 선교부가 부산에 기지를 마련하고 일을 했지만, 이미 호주 선교사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선교 효과상 이들이 협의해서 북장로교 선교회가 모든 것을 호주장로교에 양도를 하고 부산으로부터 완전히 철수를 한다.
강북은 북장로교가 강남은 호주 장로교가 맡았다.

1891년 데이비스 목사가 부산에 와서 세상을 떠났다. 도착한 후 6개월 뒤의 일이었다. 이것으로 호주 장로교회는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부산 선교에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호주 빅토리아 지역의 장로교회들이 주축이 되었다.

 

그리고 데이비스 목사가 죽은 그해 10월에 Mackay목사 가족과 세여자를 파송했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 무서운 추위가 찾아왔다. 한 겨울을 지나고 나서 그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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