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선교사들의 입국
1885년 - 한국인 전도자에 의해 교회가 생겼다. 서상준 - 솔내교회
성경이 먼저 번역되고 선교사가 들어왔다. - 이것은 복음이 구원에 이르는 능력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이것은 칼빈주의정신(솔라 스크립투라)의 영향을 먼저 받은 것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후 이수정의 일본에서의 성경번역...
- 알렌 입국, 여전히 증교 금지가 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1886년 분위기 완화 - 광혜원 설립, 그후 공사에서의 집회가 가능해 졌다.
- 언더우드는 국내 최초로 노도사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노도사는 쪽복음을 읽고 세례를 결심하게 된다. 그것은 목숨을 건 결단이었다.
1886년말 솔내교회 서상륜이 언더우드를 찾아온다. 그를 찾아온 솔내교회의 교인들에게(3명) 1887년 봄 세례를 주게된다. 이들 또한 사형의 위험을 무릎쓰고 받은 것이었다. 그해 가을 언더우드는 솔내교회를 방문 7명에게 세례를 준다.
이들은 모두 서상륜에 의해서 전도를 받은 사람들이었다.
- 서울에서 선교활동: 서대문, 남대문 밖, 정동 등에서 노방전도를 하게된다. 본격적인 선교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1887년 세문안 교회 조직, 언더우드 집에서 다른 집으로 옮기면서 조직되었다. 이 때 만주에서 활동하던 로스목사가 교회 창립예배에 참여했다.
- 선교사들의 처음 선교방법은 순회전도였다. 한곳에서 정착해서 그 지역만 복음화 하기 위해서 노력한 것이 아니라 가능한한 넓은 지역에 복음을 전하고 많은 사람들과의 접촉을 원했다. 순회전도는 여러지역을답사, 개인전도- 선교거점확보, 어느지역에 신자를 얻게되면 Mission Station을 만들고 기도회 부흥회등을 한다. 처음에는 증교금지로 인하여 권서, 개인 도등만 가능했지만, 이제 순회전도가 가능했다. 또 믿는 자들이 없었을 때는 순회전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안내인과 같이 다니면서 약품, 책자 보급등을 했다.
1887년 봄 개성을 지나 솔내교회를 방문 7명에 세례를 주었다.
언더우드 1889년 여의사 홀톤과 결혼 - 신혼여행을 전도여행으로 대치했다. 서울에서 송도, 솔내, 평양, 강계등 약 1000마일을 강행했다. 600명 치료. 의주에 도착했을 때, 100명이 세례를 받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국내에서 공개적인 성례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압록강을 건너가서 약 30여명에게 세례를 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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