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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교회사 연구소

이화학당

by 산골지기 2015.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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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랜턴 대부인 (함께 온 며느리 <스크랜턴 부인>와 구별하기 위해서 대부인으로 불려짐)은 이화학당을 통해서 근대 여성 교육의 선구자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그녀는 52세 되던 1884년 미감리회 해외 여선교회로부터 한국선교사로 임명 받고, 이듬해 외아들 내외와 함께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처음 한국에 들어와서는 익숙하지 않은 음식과 환경으로 많은 고생을 하였다고 합니다.

스크랜턴 대부인은 자신의 집에서 학당을 시작하였는데 처음에 온 학생들은 버려진 아이들과 첩들이었습니다.

 

 처음엔 낯 선 이방인에 대한 이웃사람들의 불신이 있었지만, 불신이 차츰 사그라지면서 학생들의 숫자는 점차로 불어났고 조정에서도 ‘이화학당’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였습니다.

 

이화학당에서는 한동안은 한국인 남자 선생이 막을 쳐놓고 그 뒤에서 여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는데 호기심 때문인지 학생들이 많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1889년 이화학당의 학생 수는 26명으로 늘어났습니다.

 


1896년에 기포드가 쓴 글을 보면 당시 기숙사생이 47명,

통학생이 3명이고, 평균연령은 12살, 최연소자는 8살,

최고 연장자는 17살이었습니다.

 

 

 

수업은 한글과 영어로 기초과목과 종교과목을 가르쳤습니다.

스크랜턴 대부인은 학생들이 한국적인 것을 자랑스러워하기를,

 

그리고 나아가서 그리스도와 그의 교훈을 통해서 훌륭한 한국인이 되기를 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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