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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계성(1888~1949) 목사는 신앙의 절개를 끝까지 지킨 순교자다. 일제 강점기에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옥고를 치렀다.
배교와 변절을 통해 기득권을 유지한 한국 개신교회 역사에서 방 목사는 정통파다. 하지만 방 목사는 순교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 까닭은 기독교 정신에 철저한 방 목사 때문이다.
방 목사는 가족 및 후손들에게 '옥고와 순교를 자랑하지 말라'고 엄하게 가르쳤고 유족과 후손들은 유언을 단단히 지켰다.
해방 이후에는 예배당에 인공기를 게양하라는 요구와 기독교연맹에 가입하라는 공산당의 요구에 반대하다 순교했다.
방계성은 평북 철산군에서 1887년 태어났다. 기독교를 처음 접한 것은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들이 평북 선천에 설립한 신성학교에 입학하면서다.
가정형편으로 신성학교를 1년 만에 중퇴한 방계성은 철산군청 토지산림측량기사와 철산군 원세평동 동장으로 근무하다 부산으로 이주해 수산업체 사장 딸과 결혼한다.
32세에 평양신학교를 입학했지만 가정 사정으로 2년 만에 수료한다.
그리고는 38세에 부산 초량교회 장로에 취임하면서 약관 28세에 담임목사로 부임한 주기철 목사를 운명적으로 만난다.
방계성은 43세에 목회자가 된다. 전도사에 임명된 그는 제주도 추자도에 신양교회를 개척한다.
야학을 통해 청년 인재들을 육성한 방계성은 추자도에서 유기농업의 산증인으로 정농회 초대회장을 지낸 오재길(95)과 반독재 민주화 투쟁과 통일운동에 앞장섰던 월드비전 회장을 지낸 오재식(80·2013년 소천) 형제를 발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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