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한국사인물28 임상옥의 생애 어릴적에 역관이 목표였던 아버지가 거듭된 낙방을 한다. 역관이 목표였던 아버지 아래에서 중국어를 배웠다. 결국 임상옥의 아버지는 역관 시험을 포기하고 당시 만상인 대금업자한테 돈을 빌려 금수품을 챙기고 밀무역에 나서서 돈을 벌었으나 비참한 일을 맞이한다. 결국 임상옥의 일가는 모두 관노로 끌려간다. 후에 만상 사환으로 들어간 임상옥은 만상 도방으로부터 그 능력을 인정 받기에 이른다. 만상 도방은 그에게 밀무역을 시키기 시작하면서 상업에 종사하기 시작한다. 1810년 순조 때에는 국경 지방에서 인삼의 무역권을 독점하였다. 1811년 순조때에는 홍경래의 난으로 인해 의주가 위험해지자 의병을 모을 모집금과 군수물자를 살 돈을 제공하였다. 1821년 변무사의 수행원으로 청에 갔을 때, 베이징 상인들의 불매 동맹.. 2016. 11. 30. 이상재 이상재는 1867년 과거에 낙방한 후 박정양의 개인비서로 관계에 투신하였으며 1881년 일본을 시찰, 개화 사상을 접하였다. 귀국 이후 개화파 관료로 활동하다가 갑신정변에 연루되어 관직에서 사퇴하였다. 정치적 스승인 박정양의 몰락 이후 고향에서 은거하다가, 미국공사관 2등 서기관으로 부임하였다. 이후 조선을 속국으로 여기고 외교에 개입한 청나라 사신을 물리치고 직접 외교의 길을 열었다. 귀국 이후 독립협회, 만민공동회에서 민중 계몽운동을 하였다. 그러나 1899년 11월 독립협회, 만민공동회는 강제 해산되고, 1902년 개혁당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었다가 풀려났으며 한일병탄 이후에는 관직을 사퇴하였다. 1905년 이후에는 윤치호와 함께 YMCA를 지도하였으며, 1919년의 3·1 만세 운동에는 참여를 거.. 2016. 11. 13. 김병연 조선 시대의 방랑 시인으로 김삿갓으로도 불린다. 조부 김익순이 홍경래의 난 후 역적의 집안으로 몰려 몰락하였고, 기성 정치에 실망한 후 방랑 생활로 한평생을 보냈다. 일상적이고 파격적인 언어와 날카로운 풍자로 상류 사회를 희롱하고 재치와 해학으로 서민의 애환을 노래한 시를 주로 창작하였다. 작품 개춘시회작(開春詩會作) 이 시는 방랑 시인 김병연이 남산에 올라 봄 경치의 아름다움을 예찬한 한시이다. 양반의 문학인 한시 속에 순우리말로 된 한글을 삽입하여 표현의 묘미를 거두고 있다. 삽입되어 있는 한글은 순우리말로서 음성 상징어, 동작을 표현하는 말, 색채감을 나타내는 말들이다. 이는 시적 상황이나 시적 화자의 감정을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한 의도로 쓰였다 2016. 10. 31. 우장춘 우장춘(禹長春, 1898년 4월 8일 ~ 1959년 8월 10일)은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농생물학자, 식물학자, 원예육종학자이며 농학박사 및 예비역 대한민국 해군 소령이다. 1945년 8·15 광복 이후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왔으며, 아버지의 오류가 한평생 짐이 되었으나 한국의 식물학과 농학을 이끌었다. 을미사변 당시 명성황후 살해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조선인 우범선(禹範善)과 일본인 어머니 사카이 나카(酒井ナカ) 사이에서 2남 중 장남으로 1898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명성황후의 원한을 갚고자 했던 고영근에 의해 그의 아버지 우범선이 살해됐고, 과부가 된 그의 일본인 어머니는 우장춘을 사찰에 맡겼다. 그의 아버지 우범선은 조선에서 훈련대대장을 역임하던 중 일본인 자객들과 함께 공모하여 .. 2016. 10. 17. 이전 1 2 3 4 5 6 7 다음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