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한국사인물28 일연 일연은 경상북도 경산에서 태어났다. 전국의 여러 사찰에서 수행 및 주석을 하였고 32세 무렵, "중생의 세계는 줄지 않고 부처님의 세계는 늘지 않는다[생계불감 불계부증(生界不減 佛界不增)]"는 화두를 참구하다가 마음이 시원히 열리며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이에 스스로 "오늘에야 삼계(三界)가 몽환(夢幻)같고 대지(大地)가 무극(無極)임을 보았노라."고 노래하였다 한다. 78세에 국존으로 등극하였고 세수 84세에 이르러, 손으로 금강인을 맺고 입적하였다. 삼 국 유 사 민족의 유전자와 의식구조, 신앙과 사상, 민중의 삶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민족문화의 보물창고 삼국유사는 삼국사기를 보충한다는 의미에서 '남은 이야기'다. 2016. 6. 21. 숙종 숙종은 1674년 8월 18일 현종이 34세로 승하하자 8월 23일 14세의 소년왕으로 즉위한다. 보통 왕이 즉위하는 것은 선왕이 승하하고 대렴을 마친 5일 후다. 8월 15일에 탄생한 숙종의 나이가 우리나이로 치면 만 13세에 막 들어선 때였다. 전례로 보아 성년인 20세까지 대비가 수렴청정을 해야 마땅하지만 숙종은 곧바로 친정에 들어섰다. 숙종의 어머니인 명성왕후는 성격이 거칠었다. 명성왕후의 아버지인 김우명이 복창군과 복평군이 궁궐을 드나들며 궁녀와 사통해 임신한 사건인 일명 '홍수의 변'을 고변하자, 남인들은 김우명이 무고한 왕자를 죽이려 한다고 김우명을 벌주자 한다. 그러자 정청에 달려 나와 마루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며 울부짖어 대신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든 왕비다. 더 해괴한 일은 아버지 .. 2016. 6. 20. 문익점과 목화 문익점에 의한 목화씨의 전래와 재배 및 목면의 생산은 우리나라 직물사뿐 만 아니라, 산업구도나 생활문화에도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의생활 향상에서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고, 씨아나 물레, 가락, 날틀 같은 면직기구의 제작은 생산도구 제작의 단초를 열었다. 탈지면은 지혈이나 외과치료용으로 쓰이고, 솜은 초나 화약의 심지로 유용 되었다. 내구성이 강한 무명실로 만든 바느실이나 노끈, 낚싯줄, 그물은 일 상용품을 일신시켰다. 그런가 하면 무명은 물물교환에서 통화수단으로 이 용되기도 하고, 일본이나 중국에 대한 주요 수출품의 하나이기도 했다. 고려조 우왕 때에 문익점이 살던 마을인 배양리에 효자비를 세우고, 조선 정종 때는 그가 세상을 뜨자 묘사를 짓게 했다. ◆ 조선시대 에도 추앙된 문익점 태종 때는 조선왕조.. 2016. 6. 20. 고산자 김정호 고산자 김정호는 우리 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지리학자다. 는 우리 나라의 고지도 중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김정호 자신이나 그가 지도나 지지를 제작한 과정 등은 잘 밝혀져 있지 않다. 고산자의 출생지는 오랫동안 황해도 봉산(鳳山)이라고 알려져 왔는데, 1980년대 후반에는 황해도 토산(兎山)이라는 설이 제기되었다. 김정호의 출생과 사망시기도 분명하지 않다. 청도 김씨(淸道 金氏) 족보에도 김정호는 실려 있지 않으며, 조선 후기의 어느 문헌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숭실대 기독교박물관장을 역임하고, 고지도 연구에 업적을 남긴 김양선(金良善) 목사는 김정호가 1804년에 태어나 1866년에 사망했다고 기록하였다. 김정호가 제작한 전국지도 (1834), (1857), (1861, 186.. 2016. 6. 20. 이전 1 ··· 4 5 6 7 다음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