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728x90

우리 역사/조선218

북인세력 붕당 정치 초기부터 서인과 대립하던 동인은 조선 선조 때 일어난 정여립의 역모 사건을 계기로 남인과 북인으로 분파되었다. 서인 정철의 건저의 사건을 전후하여 정여립의 사형을 주장한 서인과의 대결에서 남인은 상대적으로 온건론을 내세웠고, 강경파는 북인을 형성했다. 중심 인물은 정인홍, 정여립, 이발(李潑), 이산해 등이다. 이들은 유성룡이 이끄는 남인과 대립하였으며, 학문적으로는 조식을 따르는 선비들이었다. 반면 남인에는 이황의 학문을 계승하는 유학자들이 참가했다. 대북파와 소북파 1602년에 임진왜란 때의 타협적 정책을 빌미로 정인홍의 탄핵을 받은 유성룡이 밀려나면서 북인이 정권을 장악했다. 북인은 고위 관료 중심의 대북과 신진 세력인 소북의 두 개 정파로 구성되었다. 선조 말기에는 소북이, 광해군 대에.. 2016. 11. 21.
임술민란 농민봉기 란 농민이 벌떼처럼 일어난다는 것인데요 조선후기 세도정치 시기에 농민봉기가 일어난적이 있는데요 대표적인 것이 임술민란입니다 임술민란(壬戌民亂), 또는 임술농민항쟁(壬戌農民抗爭)은 1862년, 조선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농민 봉기이다. 당시 조선은 임진왜란 이후 심화된 체제모순이 해결되지 않은 채 수백 년이 흐른 상태였고, 이 과정에서 세금 제도의 문란 및 지배 계층의 횡포가 자행되었다. 피지배 농민 계층의 생활고는 가중되었고, 불만은 누적되었다. 1862년 3월 4일(음력 2월 4일)의 단성민란을 시작으로, 3월 14일(음력 2월 14일)의 진주민란으로 폭발한 농민들의 분노는 3개월 이상 삼남(경상도·전라도·충청도)과 중부·북부 지방 일부(광주·함흥 등)를 휩쓸었다. 폭도화된 농민들은 .. 2016. 11. 13.
단종 폐위 사건 세조찬위(世祖簒位) 또는 세조반정(世祖反正)은 조선의 첫 번째 반정으로 1455년(단종 3)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빼앗은 일이다. 1455년(단종 3) 한명회, 권람, 신숙주 등이 김종서 일파와 안평대군을 제거하고 단종을 폐위시킨 뒤 왕숙인 수양대군(세조)을 왕으로 추대하였다. 관점에 따라서 단종 폐위 사건으로 부르기도 한다. 수양대군은 모신(謨臣) 권람을 통하여 당시 경덕궁직으로 있던 한명회를 얻고, 한명회를 통해 다시 홍달손(洪達孫) · 양정(楊汀) 등의 유능한 무인(武人) 30여 명을 포섭하여 기회를 엿보았다. 한명회는 세상을 읽는 능력이 있는 인물로 수양대군의 책사로 활동한다. 불우한 처지에 있던 한명회와 권람은 왕권의 추락과 신권의 막강함과 사회 혼란을 이유로 들어 정변의 당위성을 .. 2016. 11. 8.
중종반정 연산군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켜 많은 선비들을 제거하였다.또한 경연(經筵) 폐지·신언패(愼言牌) 실시·성균관(成均館)의 연락(宴樂) 장소화·도성 밖 30리 내의 민가 철거·언문 도서의 폐기 등 폭정을 일삼았다. 원각사를 폐하여 연방원(聯芳院)으로 고치고, 흥청(興淸)들과 기거를 함께하며, 채청사(採靑使)를 각 지방에 보내 미녀를 끌어들이고, 유희와 안락으로 세월을 보내며 국정을 도외시하자, 이에 훈구 세력을 중심으로 반정의 움직임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경과[편집]전 이조참판(吏曹參判) 성희안은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박원종, 이조판서(吏曹判書) 유순정, 군자감부정(軍資監副正) 신윤무 등과 함께 왕이 장단(長湍) 석벽(石壁)을 유람하는 날을 기하여 거사할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왕의 행차가 취소되면서.. 2016. 11. 6.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