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우리 역사/조선218 집현전 중국에서는 한나라·위나라 이래 설치되어, 당나라 현종(玄宗) 때 완비된 기관으로서 이곳에 학사(學士)를 두어 경적(警籍)의 간행과 서적의 수집 등을 맡아 보게 하였다. 한국에도 옛날부터 이 제도가 수입되어 많은 영향을 끼쳤으나, ‘集賢殿’(집현전)이란 명칭이 사용된 것은 1136년(고려 인종 14)에 연영전(延英殿)을 집현전이라 개칭한 데서 비롯한다. 그러나 고려 때와 조선의 건국 초기까지에도 별다른 활동은 없었다. 1356년(공민왕 5년) 고려 공민왕이 집현관과 우문관을 없애고, 수문전·집현전 학사를 두었다고 한다.[1] 이후에도 간간이 폐하고, 다시 설치하던 것을 조선 세종 2년(1420년)에 확대·개편하였다.[2] 이전까지는 관청도 없고, 직무도 없었으나 이때부터 청사를 가지고, 경전과 역사의 강론.. 2017. 1. 13. 상평통보 상평통보(常平通寶)는 조선시대에 주조된 화폐이다. 1633년(인조 11년) 김신국(金藎國), 김육(金堉) 등의 주청으로 상평청(常平廳)을 설치하고 주조하여 처음 유통하였으나, 중지되었다. 1678년(숙종 4년) 영의정 허적(許積), 좌의정 권대운(權大運) 등이 상평통보의 주조를 다시 주장하여 서울 일대와 서북 일부 지역에 유통케 하였으며, 법화(法貨)로 채택하였다. 숙종 말기에 들어서면서 이 화폐를 전국적으로 확대 유통시켰다. 1894년(고종 31년)에 주조발행사업이 중단되고, 1904년 화폐정리사업으로 인해 회수·폐기되었다 2017. 1. 7. 1862년의 민란 1862년(임술년)에 조선의 절반을 휩쓴 동시다발적 민란은 조선 후기 사회경제적 변화 와중에 몰락 양반을 주축으로 한 농촌 지식인과 가혹한 수탈로 붕괴된 농민층이 연합하여, 그동안 누적된 봉건적 수탈과 부패한 관료들에게 저항한 사건이다. 당시 빈농의 몰락에는 지주의 과다한 소작료뿐 아니라 각종 세금도 큰 원인을 차지했고, 세금의 징수 과정에는 부패한 관료와 아전들의 농간이 횡행했다. 당시 세금 제도는 토지세에 해당하는 전세를 납부하는 전정, 국방세에 해당하는 군포를 납부하는 군정, 환곡의 이자를 거두는 환정의 삼정(三政)이었다. 임술민란이 일어난 조선 철종 때는 온갖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이 셋 중 정상적으로 되는 것이 없었다.[2] 관리들은 온갖 편법을 동원해 백성들을 착취했고, 이에 따라 백성들의 부담.. 2016. 12. 17. 조선 시대 교육제도 조선 시대에는 관료로서 출세할 수 있는 정상적인 방법은 무조건 과거에 합격하는 데 있었으므로 자연히 교육도 과거의 준비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 또한 고려 말기의 고시 과목이자 건국 초기부터 정교(政敎)의 근본이념으로 채택된 유학(儒學)은 입신양명(立身揚名)의 유일한 도구로 양반 계급이 감독하였다. 따라서 교육도 대부분 과거의 응시자격을 구비하고 있는 양반의 자제에 한정되어 있었다. 이들은 대개 어릴 때 서당에서 유학의 초보적인 지식을 배우고 15~16세 이전에 서울은 학당, 곧 4학(四學)에, 지방은 향교(鄕校)에 들어가서 공부하여 몇 년 뒤에 과거의 소과(小科)에 응시, 여기에 합격하면 성균관(成均館)에 입학하는 자격을 얻었다 서울에 있는 성균관과 학당(4학)은 중앙 정부에 직속되고 향교는 각 주현(州.. 2016. 12. 13. 이전 1 ··· 22 23 24 25 26 27 28 ··· 55 다음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