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조선218 양명학파와 위정척사 성리학 일변도의 사상적 흐름에 밀려 표면화하지 않았던 양명학적 학풍이 정제두를 중심으로 서서히 등장하였다. 왕수인의 여러 주장을 수용하여 독자적인 학문 체계를 이룩한 정제두는 자신의 학문적 근거지를 강화도로 옮겨 ‘강화 학파(江華學派)’의 뿌리가 되었다. 그리고 ‘강화 학파’라고 불리는 정제두의 계승자들은 양명학을 받아들이면서 도교와 불교까지 수용하는 개방적인 학문 태도를 견지하였다. 그리고 인간을 도덕적 주체로 간주하여 철저하게 자기 내면에 충실하라고 주장하면서, 참된 자아의 각성과 생활 속의 실천을 강조하였다. 19세기에 접어들어 조선 사회는 서양 열강의 침투와 서양 문물의 유입으로 전통 사회의 기반이 흔들리고, 전통적인 가치관을 상실할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것.. 2019. 1. 14. 공납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서 실시된 제도 조선시대 공납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서 실시된 제도로는 대동법이 있습니다 대동법은 1608년 경기도에 처음 실시된 이후 전국적으로 확대 되는데 100여 년이 걸렸는데요 대동법의 실시로 인한 세금 부담이 늘어난 지주들의 반발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대동법의 실시로 방납을 통한 이익을 얻지 못하는 방납인들도 대동법의 실시를 반대하였다. 그리하여 지주와 방납인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대동법을 저지하려고 하였으며 왕에게 폐지를 건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백성들의 세금 부담의 감소와 세금 납부의 편리함이 커 계속 실시를 확대하였다 강원도에는 대동법을 싫어하는 자가 없는데 충청, 전라도에는 좋아하는 자와 싫어하는 자가 있습니다. …… 강원도에는 토호가 없으나, 충청도와 전라도에는 토호가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전라도에.. 2018. 12. 25. 조선의 신분제도 조선의 신분제도는 양인과 천인으로 구분이 되었고요 다음과 같이 또다시 세분이 되었습니다 양인에는 양반과 중인 상민으로 구분이 되고요 천인은 일반노예와 천민계급을 말합니다 조선 후기에는 상민들이 군역과 요역을 면하기 위하여 공명첩 구입, 납속, 족보 매매·위조 등의 방법으로 양반의 신분을 얻었는데요 그 결과 상민의 수가 크게 줄고 양반의 수가 증가하면서, 신분제가 동요되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향전은 조선 후기 향권 장악을 위해 기존 사족(구향)과 신흥 부농층(신향)이 대립한 것을 말한다. 사족 중심의 향촌 지배 질서가 무너지고 지방관의 통제가 강화되던 18세기 이후에 집중적으로 발생하였다 노비의 신분 상승 ⑴ 신분 상승 방법 : 군공, 납속, 도망을 통해 신분 상승 ⑵ 정부 정책의 변화 : 부족해진 군역 .. 2018. 12. 11. 광해군의 중립 외교 광해군의 전후 복구 사업 * 토지 대장과 호적을 정리하여 국가 재정 수입 회복 * 국방 강화 : 성곽과 무기 수리, 군사 훈련 강화 * 허준이 편찬한 “동의보감” 보급 광해군의 중립 외교 : 명과 후금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고 실리를 추구한 외교 정책 * 국제 정세 : 임진왜란을 계기로 만주에서 누르하치가 여진족을 통일하고 후금 건국(1616) → 후금이 명 위협 → 명이 조선에 원군 요청 * 중립 외교 : 광해군은 명에 대한 지원군으로 강홍립을 파견하여 실리적으로 대처하도록 함 * 결과 : 후금과의 전쟁은 피하였으나, 명에 대한 의리와 명분을 중시한 서인의 반발을 삼 2018. 12. 7. 이전 1 ··· 7 8 9 10 11 12 13 ··· 5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