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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교회사 연구소

아담스 선교사

by 산골지기 2015.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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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드 선교사는 대구에 선교기지를 세우기 위해

 

1896년 남문안 정완식의 땅 420평과 지상가옥

 

초가 5동 20여간 와가 1동 6간의 큰 저택을 구입했다.

 

 

 

그리고 그 해 4월 부인과 아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하지만 하늘이 정한 운명일까?

 

베어드가족은 곧 선교지를 옮기게 된다. 그것은 그 해 서울에서 열린 선교사 연회에서 베어드를 과거 미국에서의 교육목사 경험을 살려 서울지역 교육담당목사로 발령을 낸 것이다.

 

 베어드와 그 가족은 서울로 떠나게 되고 얼마 후

 다시 평양으로 옮기는데 평양에서

그가 세운 학교가 지금의 숭실대학교의 모체가 되는 숭실학당이다.

 

 

 베어드 선교사는 대구가 선교의 중요한 지역임을 알았기에 대구를 떠나는 것을 스스로도 안타까워했다.

 

 

베어드는  자신의 손아래처남인

 

 아담스선교사에게 대구선교를 맡겼다.

 

 

 

아담스 선교사는 부산에서 언어공부를 하고 있는 중 베어드의 부탁을 받고 1897년 11월 1일 부인 넬리딕(Nellie Dick)과 아들 Edward(안두화-계명기독대학창설자)를 데리고 대구로 오게된다.

 

 

 

  아담스 선교사는 가장 먼저 예배를 드리는데 그 예배가 대구제일교회의 첫 예배가 되었다. 

 

  아담스 선교사는 1900년

 

 학교를 세우는데 대구최초의

 

사립초등학교인 대남소학교를 세웠고

 

 1906년 계성학교를 세웠다.

 

 

그는 1929년 병으로 인하여 미국으로 돌아가기까지 대구와 경북지방의 복음전파와 교육을 위해 실로 많은 발자취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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