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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교회사 연구소

간도 이양자 교회

by 산골지기 2015.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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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약꾼 김청송, 간도에 이양자(裡陽子) 교회를 세우다

 

 

 

1885,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조선에 찾아와 복음을 선포하기 전, 관서지역을 중심으로 이 땅에는 이미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믿음의 선각자들이 있었다.

 

 

이들 모두는 심양(당시 봉천)에 본거지를 두고 압록강변 고려문을 찾아 조선 선교를 가슴에 품었던 스코틀랜드 선교사 로스와 맥킨타이어로부터 복음을 전해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는 이성하,이응찬,백홍준,김진기,서상륜과 김청송이.

 

 

 

 

이들은 이 땅에 찾아오신 그리스도를 뫼시기 위해 중국까지 나선 조선의 동방박사들이요 조선 그리스도 교회의 영화로운 첫 열매들이었다.

 

그러기에 통일이 이루어지는 날, 한국 교회의 이름으로 압록강변에 이들의 이름 석자를 새겨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이름과 함께 기념해야 할 어른들이다.

 

 백홍준과 서상륜의 자손들은 이런 저런 모습으로 선조들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형편이나 다른 분들의 흔적은 찾을 수 없는 형편이다. 저들이 의주와 소래에 양육한 가정 공동체나 교회당이 오늘날의 북한 땅에 자리하고 있는 까닭이다 

 

 

다만 저들이 일으켜 세운 하나님의 나라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이름도 빛도 없이 고스란히 우리의 혈관에 흐르고 있지 않던가? 다만 산약꾼 김청송이 세웠던 이양자교회가 지금은 중국 땅에 귀속이 되어 있어 그 흔적을 간직하고 있기에 애써 위안을 삼을 뿐이다.

 

 

지난 세월, 110년이 넘도록 현지 중국인들이 교당골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온 지린성 유림현 교당골에는 조선 교회의 흔적이 생생히 살아 있는  역사의 발상지인데 조선인들이 세운 교회당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둥에서 지안(集安)으로 교당골을 찾아 나서던 날은 유난히 맑은 하늘에 마음마저 상쾌하기 그지 없었다.

 

지안은 자강도 만포시와  경계를 하고 있다.  평양으로 도읍을 옮기기 전까지 고구려의 수도였던 탓에 고구려와 관련된 역사적 유적이 유난히도 많은 곳이다.

 

 랴오닝에서 지린성 경계로 들어서자 공안의 검문이 있었다. 탈북자들을 잡으려는 이유 외에 최근 중국 정부의 동북공정 시도에 항의하는 한국 시민 사회 단체가 곳곳에 전단을 뿌리고 배너를 걸었던 탓에 공안 당국의 신경이 곤두섰던 탓이다.

 

교당골은 지안으로부터 랴오닝 방향으로 되돌아 60여킬로 떨어진 곳에 있다.

 

정확히 일러 유림현 교당골은 독립을 꿈꾸던 광복군, 산에 약초를 캐던 산약꾼들로 붐비던 산골 마을이다.

 

지안에서 150 여리 떨어진 이 첩첩 산중에 자그만치 3000명이 넘는 조선인들이 붐볐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만큼 열악한 환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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