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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교회사 연구소

의주 지역의 복음화

by 산골지기 2015.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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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하와 백홍준에 의해서 의주 지역의 복음화가 진행되었다.

 

 1883년 이성하가 권서인으로 의주로 잠입하여 말로 복음을 전하다 성경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다량의 로스역 성경을 가지고 의주로 들어오려 했으나 국경경계가 심하여 실패했다.

 

그는 할 수 없이 성경 일부를 압록강에 버리고 일부는 소각했다. 그는 여러 번 국경을 넘어 복음을 전하다 건강상의 이유로 사퇴했다.

 

뒤를 이어 백홍준이 1884년부터 일하기 시작했다.

 

  백홍준은 이성하가 성경 반입에 실패한 것을 거울 삼아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냈다. 성경을 뜯어 노끈을 만들어 고서들을 묶어 짊어지고 국경을 통과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러한 방법으로 여러 차례 성경을 국내로 반입했다.

  백홍준은 고향인 의주를 중심으로 복음을 증거했다. 점차 강계, 부성, 삭주 등지를 다니며 전도의 지경을 넓혀 나갔다. 드디어 1885년에는 약 18명의 신자들이 예수를 믿고 자기 집에 모여서 예배를 드렸다.

  그는 언더우드의 첫 조사 가운데 한 명으로 임명받아 의주 지역의 복음의 확장에 크게 기여했다.

 

  1889년 언더우드는 백홍준의 전도를 받은 의주 사람 김이련과 그의 아들 김권근 등 33인을 압록강 건너편으로 데리고 가 세례를 주고 의주교회를 창설했다.

 

 압록강 국경에서 세례를 준 것은 국내에서의 세례를 금지한 국법을 존중하여서였다. 1892년 백홍준은 로스를 비롯한 외국인과의 내통 사실이 발각되어 국법을 어겼다는 죄명으로 검속되어 2년 동안 봉천 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다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해서 백홍준은 내국인으로는 최초의 공식적인 개신교 순교자가 된 셈이다. 비록 그는 죽었지만 그가 뿌린 복음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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