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기독교의 시작을 이야기할때 빠져서는 안될 인물이 백홍준이다.
백홍준은 1948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났는데 1874년에 만주에서 로스와 맥킨타이어 선교사를 만나게 된다. 로스와 맥킨타이어는 처남 매부지간으로 중국 선교사로 파견된 이들이다. 백홍준은 우장에서 로스와 맥킨타이어에게 한국어를 가르쳤고 1876년에는 한국인 으로서는 최초로 로스 목사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이당시 이응찬과 김진기, 이성기도 함께 세례를 받으며 백홍준과 함께 우리나라 기독교 사상 최초의 세례교인이 되었다.
백홍준은 로스와 맥킨타이어의 조선말 선생으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한문성경의 한글 번역사업도 하게 되는데 이후 서상륜도 한글 번역에 합류하였다.
로스의 성격번역 사업에 최초로 관여한 사람이 백홍준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하지가 않다. 일설에는 로스가 1878년에 한국청년들과 성경번역 사업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로스의 성격번역에 백홍준과 서상륜이 함께 관여했다는 점은 확실하다고 할수가 있겠다.
백홍준은 한문성경의 한글 번역사업을 함과 동시에 시간을 내어 평안도 일대로 전도활동도 하였다. 또 서울을 왕래하면서 언더우드 선교사를 비롯한 서양 선교사들을 만나기도 했다.
한글로 번역된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을 가지고 1882년에는 서간도의 한인촌에 복음을 전했는데 가을에는 75명의 서간도 거주 우리민족에게 세례를 베풀기도 하였다.
당시 조선 영토안에서 성경 보급은 금지가 되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로스 선교사는 백홍준을 책임자로 서민들에게 성경을 보급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백홍준은 1883년에 로스 목사로부터 권서라는 직함을 받고 고향인 평안도 의주에서 복음서들을 공급하기로 했다.
1887년에 완성된 [예수성교전서] 10권을 로스 선교사에게서 받은 백홍준은 성경책을 뜯어 한 장씩 말아서 노끈을 만들었고 낡은 종이들을 노끈으로 사서 고지 장사로 위장하여 의주 관문을 넘었다.
의주에서 노끈 성경을 풀어서 닫시 책으로 만든 백홍준은 평안도 일대에서 평민들에게 성경을 보급하는 권서의 역할을 수행 하였다.
이후 의주의 자기집에서 16명의 신도들을 모아 비밀리에 예배를 드렸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기독교 집회이다.
의주교회는 조직교회는 아니었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라고 할수가 있는데 백홍준은 여기서 우리나라 최초의 전도사가 되었다. 1889년에는 서울에 있는 언더우드 선교사를 초청하였는데 당시 언더우드 선교사는 세례문답을 통해 선발된 33명의 교인을 배에 타우고 압록강 한 가운데로 가서 세례를 베풀었다.
압록강 한가운데서 펼쳐진 이 세례는 '조선의 요단강 세례'로 불리어 진다.
이후 백홍준은 평양감사 민병석에게 탄압을 받고 투옥이 되게 되는데 옥중에서 갖은 고초를 겪다가 순교를 하게된다. 그러나 백홍준이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인 의주교회는 그의 사위가 물려받아서 계속 유지가 되게된다.
'연구소 > 교회사 연구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간도 이양자 교회 (0) | 2015.08.01 |
|---|---|
| 의주 지역의 복음화 (0) | 2015.08.01 |
| 최초의 개신교 집회 (0) | 2015.08.01 |
| 한국 개신교의 시작 (0) | 2015.07.31 |
| 최초의 장로 (0) | 2015.07.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