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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고려140

쌍성총관부 쌍성총관부는 동녕부보다 앞선 1258년에 설치되었다. 공민왕은 개혁정치를 단행하면서 쌍성총관부를 회복하였다. 고려가 쌍성총관부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이성계의 아버지인 이자춘이 많은 공로를 세웠다. 동녕부가 고려에 반환된 후에도 쌍성총관부는 약 100년 동안 원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 쌍성총관부 관할 지역은 여진족이 다수 거주하는 등 민족 구성과 역사가 복잡하였다. 원이 고려를 침략할 때 길목의 역할을 하였다. 몽골과의 전쟁이 길어지자 고려를 배반하고 몽골에 투항하는 자들도 나타났으며, 여러 지역이 원에 항복하여 쌍성총관부가 설치되었다. 원은 철령을 경계로 고려 출신으로 몽골에 항복한 조휘를 쌍성총관부 총관으로 삼고, 탁청을 천호로 임명하고 따로 다루가치를 파견하여 다스렸다. 고려는 원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 2016. 6. 5.
고려의 왕 예종은 국학에 양현고라는 장학재단을 설립하여 학문의 진흥에 매우 힘을 기울였다. 인종은 예종의 맏아들인데 인종때에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이 일어났다. 의종은 인종의 맏아들인데 의종때에 무신정변이 일어나 정중부가 실권을 잡았다. 2016. 6. 5.
초창기 금속활자 직지심체요절을 살펴보기로 하면 1377년 간행된 직지심체요절은 현존하는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본이다. 금속 활자는 금속으로 만든 활자를 필요에 따라 조합하여 책을 인쇄할 수 있어 빠른 시간에 많은 책을 간행할 수 있다. 금속 활자는 목판 인쇄에 비해 제작 과정이 복잡하고, 고도의 인쇄 기술과 금속을 다루는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에 직지심체요절에서 우리나라 선조들의 뛰어난 인쇄 기술을 확인할 수 있다. 2016. 3. 18.
전통 통신 기술 원거리 통신 기술을 살펴보면 파발은 군사 기밀 문서나 공문서를 신속하게 전달하기 위한 조선 시대의 통신 제도이다. 파발에는 말을 타고 소식을 전하는 기발과 우리나라와 같이 험난한 지형에서 효율적으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걸어서 전달하는 보발이 있었다. 파발은 봉수에 비해 신호의 전달 속도는 느렸지만 자세하고 직접적인 정보 전달이 가능하였다 봉수는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로 신호를 전달했던 통신 제도이다. 조선 시대의 봉수대는 5개의 화두로 구성되어 있으며, 횃불이나 연기를 올린 화두의 개수를 통해 외적의 침입 여부 등을 중앙에 알리는 역할을 하였다. 봉수는 중간에 한곳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신호 전달이 중단될 수 있고, 비와 안개 등 날씨에 따라 신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문제점도 있었지만, 고유의.. 2016. 3.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