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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조선

운현궁

by 산골지기 2025.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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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雲峴宮)은 조선 제26대 임금인 고종의 생부인 흥선대원군의 저택으로서,

고종이 탄생하여 즉위하기 전 12살까지 살았던 잠저이기도 하다.

운현궁의 이름은 서운관이 있는 앞의 고개라 하여 운현(雲峴)이라 불렸다.

고종이 즉위하자 이곳에서 흥선대원군이 정치를 하였고, 궁궐과 직통으로 연결되었다

 

 

 

 

현재 운현궁역에 있는 건물

 정문(正門)

운현궁의 출입문. 조선 시대 당시 정문은 창덕궁 쪽에 있었다. 현재 일반 관광객은 오직 이 문으로만 운현궁을 출입할 수 있다.

 

수직사(守直舍)

정문 우측에 위치한 수직사는 운현궁의 경비와 관리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거처하던 곳이다. 당시의 운현궁은 상당히 넓었을 뿐만 아니라 고종이 즉위하면서 흥선대원군이 막강한 권력을 행사, 궁에서 파견된 경관들과 관리하는 인원이 많았다.

 

솟을대문(大門)

운현궁 안채인 이로당과 노락당을 출입하는 문. 본래 운현궁의 중문이었지만 광복 이후 운현궁 궁역이 축소될 때 현 위치로 옮겼다.

 

노안당(老安堂)

운현궁의 사랑채. 흥선대원군이 일상적으로 거처한 곳으로 고종 즉위 후 주요 개혁정책이 논의 되었던 역사적 장소이다. 정면 6, 측면 3칸이며 처마 끝에 각목을 덧대어 차양을 설치했다. 노안당(老安堂)이란 현판은 논어- 공야장편'노인을 편하게 하다(老者安之)에서 딴 것으로, 아들이 임금이 된 덕택으로 좋은 집에서 편안하게 노년을 살게 되어 스스로 흡족하다는 뜻이다.

 

노락당(老樂堂)

운현궁에서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건물. 정면 10, 측면 3칸이다.

1866(고종 3)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 중 하나인 친영례와 봉영례가 거행되었으며, 가족들의 회갑이나 잔치 등 각종 중요 행사 때 사용되었다.

명성황후가 삼간택이 끝난 후 왕비 수업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이로당(二老堂)

운현궁의 안채 역할을 하던 곳으로 노락당(老樂堂)에서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가 있은 후 임금이나 왕비가 사용했던 건물을 신하가 사용할 수 없다는 고례에 따라 노락당(老樂堂)을 안채로 사용할 수 없어지자, 새로운 안채로 1869(고종 6)에 새로 지은 건물이다. 정면 8, 측면 7칸이다.

여성들만의 사적 공간이므로 외간 남성들의 출입을 삼가기 위해 건물의 구조가 자 형태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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