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도 최치원 유적지 개발에 한창이다. 해운대를 거친 후 다음 유랑지로 일컬어지는 창원에는 현재 선생의 대표적인 흔적으로 월영대가 있다.
월영대의 의미는 달이 비치는 대(臺)란 뜻이다. 넓이는 20평 남짓하여 그리 넓지가 않지만 여기서 최치원은 제자들에게 학문과 문장을 가르치며 은둔생활을 했다.
월영대에는 ‘월영대’라고 쓰인 높이 2.1m의 비석이 있는데 최치원이 직접 각석한 것이다.
최치원이 대를 쌓고 후학을 가르치던
유명한 곳이었기에 이후 고려와 조선시대에
많은 선비들이 찾는 순례지가 되었다.
순례자들은 선생을 흠모하여 시를 지었는데 그 중 정지상, 김극기, 채홍철, 안축, 이첨, 정이오, 박원형, 서거정, 김극성, 정사룡, 이황, 신지게, 정문부의 13명이 남긴 유명한 시는 ‘월영대 별곡’으로 불리고 있다.
경남 창원시는 월영대, 고운대 등 마산합포구 일대에 흩어져 있는 신라시대 문장가인 최치원 유적지를 중심으로 한 7.5km 길이의 '최치원의 길'을 조성하였다.
이 곳에서 동양 문학의 별인 최치원에 대한 문학의 정취에 흠뻑 ᄈᆞ질수가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최고의 문학탐방코스로 각광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은은한 달빛과 조화를 이루는 월영대는 한국 유학의 출발지이며 우리 문학의 근원지라고 일컬어진다.
조선시대의 문장가 성현은 자신이 저술한 ‘용재총화’에서 ‘우리나라의 문장은 최치원에서 시작이 된다’고 밝히면서 선생의 뛰어난 경기를 찬양한 바가 있다.
조선조 중기의 유명한 문필가인 심의(沈義)는 대관제몽유록(大觀齊夢遊錄)에서 하늘나라에 문장왕국을 세웠으되 천자는 최치원이고 수상에는 을지문덕이며 좌상에는 이제현이고 우상은 이규보라고 하면서 선생의 학덕을 최고의 수준으로 꼽았다.
이 짧은 비유에서만 보더라도 고운이 신라, 고려, 조선조를 넘나드는 최고의 문장가라 할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인용한 이 시 구절도 한·중 소통의 깃발이 됐다.
조선조 퇴계 이황은 마산의 월영대를 찾아 다음 추모시를 남겼다.
‘늙은 나무 기이한 바위 푸른 바닷가에 있건만/ 고운이 놀던 자취 내처럼 사라졌네/ 오직 높은 대에 밝은 달이 길이 남아/ 그 정신 담아다가 내게 전해주
우리나라 문장을 대표한다고 할 수가 있는 서거정과 정지상 등의 선현들도 어김없이 최치원이 머물렀던 월영대를 찾았다. 또 여기에서 예찬시를 남겼다.
고려 말의 성리학자 이색과 정몽주 등도 합포(지금의 마산)의 월영대와 최치원을 자주 거론했다.
'장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결어-- 경주 한·중 우호인물 최치원 테마타운 조성 (0) | 2015.10.07 |
---|---|
경기도 하남시의 최치원도서관 (0) | 2015.10.07 |
월영대..... 한국 유학의 연원지 (0) | 2015.10.05 |
보령의 최치원 유적 (0) | 2015.10.05 |
군산--- 최치원 (0) | 2015.10.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