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영대가 한국 유학의 연원지(淵源地)이며 시문학의 근원지라고 불리는 근거로서 조선시대 성현(成峴)의 ‘용재총화’에 ‘아국문장시발휘어최치원 (我國文章始發揮於崔致遠)’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을
봐도 고운의 명성이 얼마나 큰가를 짐작게 한다.
조선조 중기의 문신 심의(沈義)는 대관제몽유록(大觀齊夢遊錄)에서
하늘나라에 문장왕국(시인의 나라)을 세웠으되 △천자는 최치원 △수상에는 을지문덕 △좌상에 이제현 △우상은 이규보로 삼았다고 할 만큼 고운의 학덕을 천하의 명품으로 꼽았다.
이 짧은 비유에서만 보더라도 고운이 신라, 고려, 조선조를 넘나드는 최고의 문장가라 할 것이다.
월영대는 고운이 마산으로 이주해 와 남기고 간 명물이다.
유독 달(月)동네가 많은 것도 월영대와 무관하지 않다.
달은 그리움이며 안식이며 평화의 상징이다.
‘푸른 바다에 배를 띄우니/ 긴 바람 만 리를 통하였네.
(掛席浮滄海 長風萬里通)’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인용한 이 시 구절도 한·중 소통의 깃발이 됐다.
조선조 퇴계 이황은 마산의 월영대를 찾아 다음 추모시를 남겼다.
‘늙은 나무 기이한 바위 푸른 바닷가에 있건만/ 고운이 놀던 자취 내처럼 사라졌네/ 오직 높은 대에 밝은 달이 길이 남아/ 그 정신 담아다가 내게 전해주네.’
서거정, 정지상 등 열세 분의
월영대 예찬시가 전해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고려 말 이색과 정몽주 등도 합포로 부임하는 관리들에게 건넨 전별시에 월영대와 최치원이 등장한다고 했다.
중국 장쑤성 양저우시에서는 2000년 동상 제막에 이어 2007년 최치원 기념관을 짓고 매년 10월 15일을 한·중 우호 교류일로 지정, 국제학술대회, 제향 행사 등 대규모 기념축제를 벌인다.
어느 시인은 고운을 ‘신라의 달’이라고 적었다.
월영대야말로 최치원이 이 땅에 남긴 유일한 ‘대박 운석’이다.
'장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기도 하남시의 최치원도서관 (0) | 2015.10.07 |
---|---|
경상남도의 최치원 유적지 개발 (0) | 2015.10.07 |
보령의 최치원 유적 (0) | 2015.10.05 |
군산--- 최치원 (0) | 2015.10.05 |
중국의 최치원 관련 유적 (0) | 2015.10.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