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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교회사 연구소

헤론 소천 후, 세브란스 병원이 세워지기 까지

by 산골지기 2015.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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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론 선교사는, 제중원 2대 원장이다.

 


당시 전염병에 걸리면, 조선 사람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존 헤론은 의사로서, 전염병이 창궐한 마을로 직접 찾아들어가서, 헌신적으로 환자들을 치료해주고,

전염병 예방법을 교육하였다.


그런데 혼자서 그 수많은 환자들을 하루 종일 진료하시다 보니,

너무너무 과로하신 것이다.


우리 몸은, 과로하면 면역성이 떨어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전염병 환자를 치료하다가, 오히려 전염병에 감염되어, 1890년 7월 26일 (34세) 순교하였다.


그런데 더 가슴 아픈 것은,

이 분이 돌아가셨을 때, 서울(4대문 안)에 마땅한 묘지가 없었다.


그래서 미국 공사관 뜰에, 임시로 가매장을 했다.(현재 미국 대사관 자리)


그런데 당시 조선 사람들이, 미국 공사관 앞에 몰려가서, 진정appeal을 했다고 한다.

당시 우리나라는 왕의 시신도, 4대문 안에 못 묻는 문화였다.

왕릉도 다 4대문 바깥에 위치했다.

왜냐하면, 무덤에서는 귀신이 나온다고.. 사람들이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존 헤론이 떠나고 나서, 언더우드 선교사는 가슴이 아팠다.

 

 


1893년 언더우드는, 안식년에 미국에 돌아가서, 다른 의사를 초청해서 오게 된다.

그가 바로 토론토 의대출신의 에이비슨 의료선교사이다. Oliver R. Avison, 한국 이름 어비신, 魚丕信

그가 <제중원> 4대 원장으로 부임하였다.


에이비슨이 <제중원>에 와서 사역해 보니, 일이 너무너무 힘들었다.

병원 관계자들이, 약을 몰래 빼돌리는가 하면, 시설이 너무 낙후되어 있었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세운, 현대적 병원이 필요하다고 판단을 내리게 된다.

그는 미국으로 안식년을 조금 일찍 떠난다.


에이비슨은, 뉴욕 카네기 홀에서, 조선의 상황에 대해, 선교보고를 열심히 나누었다.

그 카네기 홀에서, 에이비슨의 선교보고를 듣고서, 당시 미국의 사업가 세브란스는 크게 감명을 받는다.

그가 엄청난 헌금을 드렸다. 지금 시세로 1천억이 넘는 헌금이었다.

이 자금으로, <제중원>이 새롭게 증축된다. 그러면서 병원의 이름도 <세브란스 병원>으로 바뀐다.


지금도 서울역 맞은편 왼쪽에 ‘연세빌딩’이 있는데, 과거 <세브란스 병원>이 있었던 자리이다.

조선인 의사를 길러내기 위해, 세브란스 의대도 세워졌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조선에 최초의 대학 <연희 전문>을 세웠고 이후 

 

<희 전문>과 <브란스 의대>가 합쳐져서 

 

<연세 대학>이 탄생된다.  

<제중원> 4대원장 에이비슨과, 당시 백정의 아들을 의사로 만든 이야기는 여기 클릭!

 

.................

 


◑자세한 글/ 존 헤론 선교사 양화진에 첫번째로 잠들다           출처


“땅끝으로 가라”는 명령을 순종하기 위해서 한국땅을 밝고 한없이 울던

존 헤론(John W. Heron)은 1856년 6월 15일 영국에서 태어났다.

영국에서 목회를 하던 그의 아버지는 존이 14세때 미국 테네시 주 녹스빌로 이민 와서

정착하고 목회를 했다. 존은 1883년 개교 이래 최우수 성적이라는 영예를 안고

테네시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테네시 의과대학에서는 존 헤론에게 모교에 남아서

교수가 되어 후배를 양성하는 길을 택하라고 끈질기게 권유해 왔다.

그 길은 장래가 보장되는 안정된 길이기도 했다. 의미 있고 보람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그것이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아닌 것 같았다.


존은 학교 당국과 스승의 권유를 뿌리치지 않을 수 없었다.

존은 테네시 종합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뉴욕종합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공부를 계속했다.


의사 시험 준비를 하던 중에 존은 어느 부흥회에 참석하여 성령으로 거듭나는 체험을 했다.

 

그는 기도하는 중에 “이제 준비가 끝났으니 땅끝으로 가라!”는 음성을 들었다.


헤론은  코리아의 의료선교사가 될 것을 결심했다.

 

1884년 봄, 그는 해티 깁슨과 결혼식을 올리고,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 선교사로 임명받아 1885년 6월 21일에 코리아에 입국하였다.


▲광혜원에서 선교사 한 사람이 더 늘자 화제는 더 많아지고 활기를 더했다.

조선의 역사, 정세, 풍속부터 상감의 전의(典醫)가 된 알렌의 역할에 이르기까지 이야기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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