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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교회사 연구소

전염병으로 사망하기 까지 의 헤론

by 산골지기 2015.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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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혜원의 제2대 원장이 된 헤론 선교사는

양반층뿐 아니라, 가난한 백성들(평민, 백정)의 질병을 정성으로 돌보아 주었다.


 

 

 

당시 조선의 위생 환경은 매우 불결하였다.

천연두나 장티푸스 같은 전염병이 연례행사처럼 창궐해서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수많은 목숨을 앗아 가기도 했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에 질려, 일부 선교사는 바로 자신의 나라로 되돌아가기도 하였다.

 

 

헤론은 제중원 입원 환자들을 간호사에게 맡기고,

 

따갑게 내리쬐는 햇볕 아래 진료가방을 챙겨 들고

 

100리 이상 떨어진 시골 지역을 다니며 전염병을 치료했다.

 


자신의 몸을 전혀 돌보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많은 환자들을 돌보던 헤론은

결국 자신이 전염병에 걸려 쓰러졌다.

 

 

헤론은 1890년 7월 26일  이질에 걸려, 34세의 젊은 나이로 소천했다.


그의 영혼이 천사의 인도를 받으며 세상을 떠나는 날 입원해 있던 한국인 환자도 울고,  동료 선교사들도 울었으며, 그를 알고 있는 정부 고관들도 울고 말았다.


그는 모든 고통을 자신을 구원한 예수님께 맡기고, 조용히 하늘나라를 바라보면서, 천사의 안내로 하늘로 향했다.

 

 

헤론은  선교사로는

최초로 양화진에 묻혔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 자기 부인의 손을 잡고,

두 딸과, 제중원의 모든 한국인 환자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위해 그의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으십시오!"


왜 헤론은 의사로서 보장된 길을 버리고, 선교사의 길을 선택하였는가?

왜 그는 전염병이 창궐하던 가난하고 어두운 조선 땅을 찾아왔는가?

왜 그는 전염병에 걸려 자신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많은 환자들을 찾아가 돌보다 전염병에 걸려 죽어야만 했는가?


그것은 사랑이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부은 바 된 하나님의 사랑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랑은 말이 아니다. 사랑은 관념이 아니다. 사랑은 철학이 아니다.

사랑은 희생이다. 사랑은 자기 생명을 주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그의 묘비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라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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