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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교회사 연구소

상동 교회

by 산골지기 2015.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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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에 조선 입국한 스크랜턴은 정동교회 근처에 정동감리교병원을 세우고 가난한 환자들을 무료로 치료하다가, 의료사업을 확장하기로 하고 남대문 근처인 지금의 상동교회 자리를 구입하여 약국과 병원을 차려 의료선교와 복음선교를 겸함으로써 오늘의 상동교회가 시작되었다.

1893년 이 병원교회가 정식으로 구역회로 승격되어 스크랜턴이 담임목사로 임명되었고, 1895년 정동병원을 상동병원으로 통합하여 상동교회 자리는 전적으로 병원으로 사용하였다.

 

상동 교회는 지금의 한국은행 자리인

달성궁()으로 옮겨  교회와 병원이 분리되었다.

 

1900년 7월 상동병원이 세브란스병원과 통합되었다.

 

이후 상동병원 자리에 현대식 교회건물을  1901년 6월에 준공하고 여기로 자리를 옮겼다.

 

교회 이전후 전덕기 전도사가

교회를 맡았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전덕기를 중심으로 한 조약무효투쟁이 전개되어, 김구()·이준() 등의 독립투사들이 자주 드나들었고, 1907년 이 곳 지하실에서 헤이그특사사건의 모의가 이루어졌으며, 같은 해 이 곳에서 신민회()가 조직되어 교육을 통한 독립운동이 전개되었다.

즉, 중등교육기관으로 상동청년학원을 설립하여 청년들에게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을 고취시켜 독립정신을 함양하는 데 주력하였다.

그러나 1914년 전덕기가 신민회 사건으로 순직하고 상동청년학원도 폐교되는 불운을 겪게 되었으며, 민족항일기 말기에 이르러서는 교회에 대한 탄압이 더욱 가혹해져, 1944년 3월 마침내 폐쇄되어 일제의 신사참배와 소위 황도정신()의 훈련장인 황도문화관으로 바뀌었다.

8·15광복을 맞아 재건되었으나 6·25전쟁으로 교회건물이 많이 파괴되었으므로, 1974년 10월 벽돌예배당을 헐어 현재의 12층 건물을 신축, 7층 이상을 교회로 사용하고 지하층과 지상 4층까지는 백화점으로 사용하여, 여기서 나오는 이윤을 전적으로 선교사업에 충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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