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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근현대사180

서양함대의 침입 1856년 프랑스의 게랭 제독이 비르지니(Virginie) 호를 이끌고 2개월간 조선 근해를 탐사한 이후 프랑스 식민성에 한반도를 무력 점령하여 식민지로 삼을 것을 건의한 적도 있었지만 곧바로 시행되지는 않았다. 그 후 조선에서 병인박해가 일어나 프랑스 신부가 처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오자 청 주재 프랑스 공사는 청과 조선의 조공 관계를 언급하며 청에게 거중 조정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청은 “조선이 비록 조공국이지만 정교 금령(政敎禁令)의 모든 일은 조선이 전적으로 자주 자행(自主自行)하므로 이에 관여할 수 없다.”라고 답변하였다. 이에 프랑스 공사는 조선에 보복 원정을 하여 국가의 위신을 높이고 통상 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로즈의 극동 함대를 파견하였다. 로즈 제독은 리델 신부를 향도(嚮導)로 삼.. 2015. 12. 3.
근대문화골목 '근대문화골목'은 대구 중구 동산동 현재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이 있는 청라(靑蘿)언덕에서 시작한다. 청라언덕은 대구에 기독교가 뿌리 내려 성장한 중심지이며 학창시절 대부분의 학생이 불러봤던 '동무생각'의 노랫말 배경이 된 곳이다. '동무생각'은 대구가 낳은 한국근대음악의 선구자인 박태준(1900~1986)이 자신의 연애사를 교분이 있던 시인 이은상이 듣고 쓴 시에 다시 곡을 붙인 가곡이다. 청라언덕에 올라서면 1893년부터 선교활동을 하던 미국 선교사들이 짓고 살았던 주택이 보인다. 붉은 벽돌집에 담쟁이 넝쿨이 벽을 휘감고 있어 인상적이다. 지금은 의료·선교 관련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데 근대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바로 옆에는 대구제일교회가 우뚝 서있다. 대구제일교회는 조선 말기인 1893년.. 2015. 11. 23.
임시정부 해외의 민족해방운동가들은 3·1운동에서 드러난 조선 민족의 해방의지를 담아 1919년 4월 상하이[上海]에서 임시정부를 발족시켰다. 임시정부의 주요노선은 열강에 독립을 청원하여 독립을 얻어야 한다는 외교론이었다. 임시정부는 1919년 파리 강화회의나 1921년 워싱턴 회의에 대표를 파견하여 독립을 호소했으나, 열강의 냉담한 반응으로 전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외교활동에 소득이 없자, 대한민국임시정부 주변에 모였던 민족해방운동가들이 하나 둘 상하이를 떠나기 시작함으로써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명맥만 겨우 유지하게 되었다. 한편 간도와 만주 연해주의 조선 동포들을 기반으로 조직된 항일무장단체들은 3·1운동을 계기로 평안북도 갑산·혜산 일대와 압록강과 두만강을 중심으로 한 국경 지방에서 격렬한 무장투쟁을 벌였다... 2015. 11. 17.
조선 주재 미국 선교사 미국 선교사들 중에는 조선주재 미국 관리나 고문은 물론이고, 영향력 있는 조선 정치인들과 교류하거나 심지어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맺은 사람도 있었다. 미국 선교사들과 조선 정치인, 그리고 나아가 선교사와 조선의 정치 상황과의 관계를 다루는 일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행해질 작업이다. 선교사들과 조선 정치인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맺어졌으며, 그 관계의 성격은 무엇이었으며, 서로와의 관계를 통하여 선교사들과 조선 지도자들이 피차 추구했던 것은 무엇이며 얻게 된 것은 무엇이었는가 하는 점들을 살펴볼 것이다. 이와 아울러 주목해야 할 점은, 선교사들이 조선인에게 소개한 종교와 사상과 삶이 그들의 의도와는 관계없을지라도 무언가 새로운 것을 갈망하던 격동기 조선 지식인들의 마음속에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사고를 불어넣었.. 2015.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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