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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중국사57

난징 대학살 기념관 난징 대학살 기념관은 1937년, 당시 중국의 수도 난징에서 일본군에 의해 약 2개월간 자행된 대학살 사건을 기념하고자 세워졌다. 중 · 일 전쟁의 발단이 된 루거우차오(蘆溝橋)사건 이후 반년 만에 난징이 함락되었는데, 일본 중지나방면군(中支那方面軍)의 사령관 마쓰이 이와네(松井石根) 대장 휘하의 5만여 일본군은 난징으로 진격하는 도중 그리고 점령 후에 중국인 포로와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무자비한 강간, 학살, 약탈을 자행하였다. 학살 방법은 기총에 의한 무차별 사격, 생매장, 휘발유를 뿌려 불태워 죽이는 것 등으로 매우 잔인하였다. 이 사실은 당시 일본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외국인 생존자에 의해 곧바로 세계에 보도되었으며, 몇몇 르포르타주나 보고서에 의해 점차 더 널리 전해졌다. 극.. 2018. 12. 13.
정강의 변 정강의 변이란 1126년 송나라가 여진족의 금나라에 패하고, 중국 사상 정치적 중심지였던 화북을 잃어버리고, 황제 휘종과 흠종이 금나라에 사로잡힌 사건을 말하는데요 정강(靖康)은 당시 북송의 연호입니다. 금나라는 흠종과 휘종 이하 왕족과 관료 수천 명을 포로로 잡아 만주로 연행했다. 금나라는 도교에 심취해 국정을 소홀히 한 휘종에게 정신이 혼미하다는 의미로 혼덕공(昏德公), 흠종에게 중혼후(重昏候)라는 모멸적인 칭호를 붙였다. 그들은 비참한 포로생활을 했고, 대부분 그곳에서 남은 생을 마친다. 이후 남송의 재상이 된 진회도 이때 같이 끌려갔다가 극적으로 탈출하게 되는데, 외교의 중요성과 대책없는 주전론을 경계하는 평생의 계기가 된다. 이렇게 송은 멸망했지만, 당시 수도인 카이펑에 있지 않던 휘종의 아홉번.. 2018. 12. 10.
조광윤 후주의 장군이던 조광윤(태조)은 960년에 송(宋)나라를 세우고, 오랫동안 계속된 혼란을 수습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태조는 나라가 어지러워진 것은 무엇보다도 절도사 제도에 잘못이 있다고 보고, 절도사의 권한을 대폭 줄이는 동시에 절도사를 차츰 문관으로 바꾸어 나갔다. 또 황제의 권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통치 조직을 고치고, 문관을 우대하는 원칙을 세워 중앙 집권의 강화에 힘썼다. 문관 등용을 위한 과거 시험도 당나라 때보다 대상 범위를 확대하였다. 이에 따라 지방의 지식층인 지주나 상인의 자제들이 중앙 관리로 많이 통용되었는데, 이것도 황제의 권력을 강화하는 구실을 하였다. 송나라는 이처럼 황제 중심의 독재 정치를 확립시키는 데는 성공했으나, 문관만을 우대하는 지나친 문치주의는 군사력을 약화시키는 결.. 2018. 12. 1.
당의 멸망 당나라에는 어떤 나라에 정복이 되면서 망한 것은 아니고요 당의 말엽에 중앙의 통제력이 약화가 되면서 절도사들이 준동을 하였고요 결국 절도사들이 각기 독립을 하는 상황에서 나라가 자체적으로 망하게 됩니다. 당나라의 멸망이후 중국은 당분간 분열의 시기를 맞게 되는데요 이 시기를 5대 10국 시대라고 말합니다. 5대 10국의 분열은 이후 송에 의하여 통일이 되게 됩니다 당 --- 5대10국시대 --- 송 2018. 10.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