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우리 역사/조선219 도산서원 1970년에 도산서원 성역화 작업이 이루어졌다. 장판각에서는 목판을 제작하였다. 도산서당은 이황이 교육활동을 펼치던 곳으로 도산서원의 모태가 되었다. 2016. 7. 5. 성리학 관련 문제 조선은 성리학을 중심으로 하였는데 성리학외의 사상을 무조건 배척하기 보다는 다른 사상을 유교사상으로 흡수하고자 하였다. 불교와 도교, 토속신앙을 포함하는 종교생활까지 유교사상으로 흡수하고자 한것이다. 성리학을 중심으로 하면서 다른사상을 흡수한다는데 그 초점이 있겠다. 조선의 성리학이 정립되기 시작한 것은 중중때부터였다 중종때에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 서원이 건립된 이후 명종때에 소수라는 사액을 받았다. 최초의 사액서원은 명종때부터 시작이 된 것이다 행정직 공무원 상담하기(클릭) 2016. 7. 3. 존현각 일기--- 11월 11일 1775년(영조 51) 11월 1일에 쓴 글을 살펴보자, 이러한 글들은 정조가 왕세손으로 있을 때 영조 말기의 대리청정을 둘러싼 정국에 관해 쓴 일기로 나중에 ‘일성록’의 시초가 됐다. 말하자면 자신의 삶을 기록한 자서전이라고 하겠다. 앞글에서 언급된 홍인한과 정후겸 일파가 세손의 신상까지 위협했다는 내용 등이 들어 있다. 2016. 7. 3. 존혁각 일기 정조는 1759년(영조 35) 왕세손으로 책봉된 뒤, 아버지 사도세자(莊獻世子)가 뒤주 속에 갇혀 8일 만에 굶어죽자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그는 1762년 경희궁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흥정당(興政堂) 동남쪽의 친현각(親賢閣)을 2층 건물로 개축하였다. 정조는 이 건물의 위층을 주합루(宙合樓), 1층을 존현각으로 이름붙이고, 이곳에 거처하면서 서연(書筵)의 중심지로 삼았다. 〈존현각일기〉는 바로 이 무렵, 곧 정조가 왕세손으로 있을 때 쓴 일기로, 그대로 풀이하면 존현각 시절의 일기라는 뜻이다. 두렵고 불안하여 차라리 살고 싶지 않았다.” 정조가 세손이던 1775년 2월 5일 쓴 일기인 ‘존현각 일기’에 나오는 글이다. 정조는 증자(曾子)의 “一日三省(날마다 세 가지로 자신을 살핀다)을 마음에 새겼다. 그.. 2016. 7. 3. 이전 1 ··· 33 34 35 36 37 38 39 ··· 55 다음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