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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조선218

동문선을 편찬한 서거정 조선시대의 유명한 인물은 매우 많지만 그 중에서 우리나라글을 모아서 동문선이라는 책을 편찬한 서거정을 들겠습니다 서거정은 여섯 왕을 섬겨 45년간 조정에 봉사하였고, 시문을 비롯한 문장과 글씨에도 능했으며 시화(詩話)의 백미인 《동인시화(東人詩話)》와 《동문선(同文選)》 등을 남겨 신라 이래 조선 초에 이르는 시문을 선집, 한문학을 대성했다. 덕행이 있어 세조 때 《경국대전》, 《동국통감》, 성종 때 《동국여지승람》 등 책의 편찬에 깊이 관여하였으며, 또한 왕명으로 《향약집성방》을 한글로 번역했다. 성리학을 비롯하여 천문·지리·의약 등에 이르기까지 정통했다. 사후 문충(文忠)이라는 시호가 내려지고, 경상도 대구의 구암서원에 배향되었다. 서울 지하철 7호선의 사가정역은 그의 호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2017. 12. 1.
북학파 실학자들 가운데 한양의 도시 분위기 속에서 자란 일파가 있었다. 이들은 한양의 상공업 발전과 직간접적 관계를 가지고 있어 주로 상품의 유통이나 생산수단의 발전을 주장했다. 이들의 사상은 이용후생(利用厚生)으로 요약된다. 북학파는 청나라의 전성기 모습에만 감화된 것은 아니었다. 이미 상업 도시로 변모한 18세기 후반의 서울과 탕평책으로 대표되는 영조와 정조의 인재 등용도 그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줬다. 그들은 17세기 초 침류대학사(초기 실학자를 일컬음)들이 추구한 절충적 학풍과 17세기 후반 서울 남인들(야당)이 제기한 고학(古學) 및 농촌경제에 대한 관심도 적극 수용하였다. 이제 한양의 일부 노론은 상공업발전의 모토 위에서 농촌문제 해결도 아울러 고려하면서, 청나라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부국강병과 .. 2017. 11. 5.
홍문관 홍문관(弘文館)은 조선의 행정기관이자 연구기관으로, 예조의 속아문이다. 삼사의 하나로 옥당(玉堂)·옥서(玉署)·영각(瀛閣)이라고도 하며 사헌부, 사간원과 함께 언론삼사라고도 한다. 왕궁 서고에 보관된 도서를 관리하고 문학관계의 일을 전공하며 임금의 물음에 응하였다. 조선에서 경전에 나오는 옛 사람들이 행한 정치를 연구하고 군주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공부하는 것은 중요하게 여겨졌으므로 홍문관은 조선 정치기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관원은 모두 문관이었으며, 모두 경연의 관직을 겸임하였고, 부제학부터 부수찬까지는 모두 지제교를 겸임하였다. 조선시대 청요직(淸要職)의 상징으로서 정승·판서 등 고위 관리들은 거의 예외없이 이곳을 거쳐갔다. 오늘날의 교육부에 해당한다 조선의 언론 삼사 사헌부, 사간원.. 2017. 11. 2.
대전회통 《대전회통》은 1865년(고종 2년)에 조두순(趙斗淳) 등이 왕명에 따라 편찬한 법전이다. 육전조례와 함께 조선왕조 5백 년을 통한 마지막 법령집으로, 조선시대 법령의 종합판이다. 이 책은 《대전통편》을 저본(底本)으로 이후 왕의 교명·규칙·격식을 보록(補錄)한 책이다. 《경국대전》의 본문을 원(原), 《속대전》의 본문을 속(續), 《대전통편》의 본문을 증(增), 새로 보록한 것은 보(補)라 하여 구별하였다. 흥선대원군이 왕권을 강화하고자 편찬하여 통치법령을 정비하였다 조선의 법전 경국대전-- 속대전---대전통편--- 대전회통 2017. 9.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