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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조선218

광해군... 임진왜란 직후의 왕 광해군은 임진왜란 직후의 왕인인데요 당시의 국제 정세는 명청의 교체기였고 이 상황에서 광해군의 외교 정책은 중립외교 였습니다 1575년에 태어나 어린 나이에 광해군(光海君)에 봉해졌다. 어려서 생모 공빈 김씨를 여의고 부왕의 냉대 속에 자랐다. 외할아버지인 김희철마저도 임진왜란 중에 전사하면서 그가 기댈 곳은 없었다. 선조에게 적자가 없는 데다, 서장남인 임해군이 포악하고 인망이 없어 서차남이었던 광해군이 세자(世子)로 책봉되었다. 야사에 의하면 선조가 아들들을 불러 '가장 맛있는 음식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다른 왕자들은 각기 다른 대답을 하였지만, 광해군은 소금이라 대답하여 세자로 책봉되었다고 한다. 1591년(선조 24) 종계변무가 성사되자 기뻐했던 부왕 선조는 왕자들도 특별히 광국원종공신 1등에.. 2017. 9. 5.
성리학 성리학이란 남송시대의 주희가 집대성한 유교의 한사상인데요 기존의 유학과는 다른 새로운 유학이라는 의미에서 신유학이라고도 불리고 있습니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주희)의 이름을 따서 주자학(朱子學)이라고도 하고, 송나라 시대의 유학이라는 뜻에서 송학(宋學)이라고도 하며, 송나라 시대 이전의 유학의 가르침을 집대성한 새로운 기풍의 유학이라는 뜻에서 신유학(新儒學)이라고도 한다. 정호(程顥)와 정이(程頥)에서 주희(朱熹)로 이어지는 학통이라는 뜻에서 정주학(程朱學), 정주 성리학(程朱性理學), 또는 정주 이학(程朱理學)으로도 불린다. 이학(理學) 또는 도학(道學)이라고도 한다. 학문의 목적은 위기지학(爲己之學, 자기(수양, 수기)를 위한 학문)이다. 도덕론에서 이천이 명(命)·성(性)·이(理)·심(心)을 동일.. 2017. 8. 24.
사림 사림은 본래 고려 말부터 지방의 중소지주 출신 사대부 가운데 중앙정계에 진출하지 않고 지방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던 세력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들은 조선 건국 시기에 역성혁명을 반대하고 주로 향촌사회에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성종이 훈구파를 견제하기 위해 김종직과 그의 제자들인 김굉필, 정여창, 김일손 등을 등용한 것을 계기로 중앙정계로 진출하였다. 네 차례의 사화를 거치며 훈구파의 탄압을 받다가 선조 대에 이르러서는 훈구파를 정치의 전면에서 몰아내고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조선 중기 붕당정치의 단초가 되었다. 뚜렷한 학통은 없으나 처음으로 중앙정계에 진출하여 제자들의 등용을 도운 김종직의 아버지 김숙자가 길재의 제자였으므로, 길재의 학통이 김종직에게 이어진 것으로 보아 사림을 길재의 학통으로 보기도 .. 2017. 8. 16.
암행어사 암행어사(暗行御史)는 조선 시대에 몰래 지방에 파견되어 지방관의 감찰과 백성의 사정을 조사하는 일을 비밀리에 수행했던 국왕 직속의 임시 관리로 부사의 일종이다. 수의(繡衣), 직지(直指)라고도 한다 전국 지방행정의 감찰은 본래 사헌부의 임무이지만 교통과 통신수단의 불편으로 지방관의 악정을 철저히 적발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따라서 국왕이 비밀리에 어사를 임명하여 각 지방에 파견하여 변복을 하고 비밀감찰의 임무를 맡게 하였다. 암행어사는 각종 어사 중의 하나로 다른 어사와는 달리 임명과 임무가 일체 비밀인 것이 특징이다. 성종 때 지방 수령의 비리가 크게 문제가 되면서 성립했는데, 조선 후기 삼정문란이 심해지면서 더욱 활발히 시행되었다. 암행어사라는 말이 처음 쓰인 것은 명종 5년인 1555년이지만 최초의.. 2017. 8.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