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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근현대사

일제시대의 경제적 민족운동

by 산골지기 2025.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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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의 경제적 민족운동으로는 평양에서 시작된 물산장려운동이 있다.

3·1 운동 이후 경성 방직과 같은 한국인 기업이 설립되어 미약하게나마 한국인 자본가 계층이 형성되었다. 

물산장려운동을 주도한 조만식


 

 

1920년대 들어 회사령이 폐지되자 일본 자본이 본격적으로 조선에 진출하였으며,

1923년 일본과 조선 사이에 관세가 대부분 철폐되자 일본 상품이 대량으로 밀려들어 왔다. 

한국인 자본가와 언론은 민족의 경제적 실력 양성을 주장하면서,

한국인 자본의 보호와 육성을 대중에게 호소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1920년 조만식 등은 평양에서 조선 물산 장려회를 발기하고, 자작자급을 위한 운동을 펼칠 것을 제창하였다. 이어 1923년 서울에 조선 물산 장려회가 조직되면서 물산 장려 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졌다.

 

지방에서도 자작회, 토산 장려회 등의 단체들이 조직되어 ‘내 살림 내 것으로’,‘ 조선 사람 조선 것으로’등의 구호를 앞세우며 토산품 애용, 근검저축, 금주·단연 등을 실천하자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운동의 결과 무명옷을 비롯한 국산품의 소비가 늘어났으며, 토산품 애용 의식이 확대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늘어난 수요를 뒷받침할 만한 생산력 증대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일부 상인들은 물건 값을 올려 폭리를 취하였다.

이에 소비자들이 물산 장려 운동에 등을 돌렸으며, 사회주의자들은 자본가와 상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 운동이라고 비난하였다. 그 결과 물산 장려 운동은 1923년 여름 이후 침체 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조선 물산 장려회는 이후에도 계속하여 토산품장려 운동을 전개하였다

물산장려운동은 1920년대 초부터 1930년대 말까지 전개된 경제자립운동으로, 조선의 민족 역량 개발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이 운동은 3·1운동 이후 나타난 새로운 민족운동의 일환으로, 조선물산의 애용을 장려하고 조선인 기업의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19208월 평양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조선물산장려회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자작자급을 통해 조선의 경제적 자립을 이루고자 하였습니다.

이 운동은 조선의 산업 기초를 다지기 위한 중요한 노력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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