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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고대

발해의 역사

by 산골지기 2022.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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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는 거란족이 반란을 일으킨 어수선한 분위기를 이용하여 고구려의 유민들이 세운 나라입니다.

발해가 나라를 세우려 하자 당나라는 발해의 건국을 크게 반대하였습니다.

발해가 건국될 당시 당나라를 지배하던 인물은 측천무후입니다.

중국에서 여성으로 유일하게 황제가 되었던 인물인 측천무후는

  당나라  고종의 황후였지만 690년 국호를 주로 고치고 스스로 황제가 되어

15년 동안 중국을 통치하였던 인물 입니다.

측천무후

당나라의 측천무후는 발해의 건국세력을 반란군으로 규정을 하고 이해고로 하여금 토벌을 하게 합니다.

그러나 대조영이 이끄는 발해군은 추격해 오는

이해고의 토벌군을 천문령 전투에서 크게 격파를 하게 됩니다.

697년 고구려 멸망 후 대조영이 이끄는 고구려 유민은

 천문령에서 무주의 군대를 격파하였고요

천문령  전투의 승리로 대조영은 발해를 건국할 수 있었습니다.

당나라의 극렬한 반대를 물리치고 나라를 세운 발해는

초기에는 당나라와 관계가 좋지 않았지만

3대왕인 문왕때부터 당나라와 관계를 회복하고 당나라의 문화도 많이 도입을 하게 됩니다.

천문령 전투
대조영이 이끄는 발해군이
추격해 오는 이해고의 토벌군을 크게 격파한 전투

발해의 문화는 고구려의 문화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당나라의 문화도 크게 포용하는 가운데 발전을 하게 됩니다.

발해는 선왕때에 영토를 크게 확장하는 가운데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후 내부분열로 쇠퇴를 하던 발해는 거란에게 멸망을 하게 됩니다.

발해가 갑자기 멸망한 원인으로 백두산의 화산폭발을 꼽는 학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발해의 도읍 변천

발해의 첫 번째 도읍지 동모산
발해의 마지막 도읍지 상경

발해의 첫 번째 도읍지는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한 동모산입니다.

 발해의 초기 도읍지 이면서  대조영이 이곳에서 발해를 건국하였던 곳으로 알려진

동모산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옌볜 조선족 자치주 둔화 시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동모산은 지형이 험하였기 때문에 적들로부터 매우 안전했던 지역입니다.

동모산의 모습

이후 발해가 발전을 하면서 수도를 동모산에 중경으로 옮기게 됩니다.

중경으로 도읍을 옮긴이후 발해는 다시 상경으로 도읍을 옮기게 됩니다.

상경은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성을 본뜨서 만들었던 도시 입니다.

상경성의 정문 유적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성을 본뜨서 만들었던 도시인 상경에는 가운데에 주작대로가 있었습니다.

발해 상경에 남아 있는 돌거북

상경으로 도읍을 옮긴 발해는 일본과의 교류가 많아 지면서 수도를 다시 두만강 유역의 동경으로 옮기게 됩니다. 동경으로 도읍을 옮긴 발해는 다시 도읍을 상경으로 옮겼습니다.

현재의 동모산의 모습

발해의 중심도시인 상경은 160년동안 발해의 수도였던 곳입니다.

발해의 첫 번째 도읍지는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한 동모산

발해의 마지막 도읍지는 상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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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대표적인 무덤유적

발해의 대표적인 무덤유적으로 정혜 공주의 묘와 정효 공주의 묘가 있습니다.

발해의 3대왕인 문왕의 딸인 정혜 공주의 묘는 고구려식 돌방무덤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돌방무덤은 흙으로된 봉토아래에 돌로 만든 넓은 방이 있는 형태입니다.

정효 공주 묘
계단식 벽돌무덤
고구려식 무덤의 형태
당나라 풍으로 그려진 벽화

정혜공주묘는 무덤 앞에 벽돌이 깔려 있는 무덤길이 있는데요 이 무덤길을 통해서 무덤 안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정효 공주 묘의 무덤 양식은 계단식 벽돌무덤입니다.

정혜 공주 묘는 돌방무덤이기 떄문에 고구려식 무덤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정효 공주 묘는 벽돌과 돌을 쌓아 만든 무덤이기 때문에 중국식 벽돌무덤의 형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정효 공주 묘에는 당나라 풍으로 그려진 벽화도 있습니다.

 

●발해 문화의 특징

고구려를  게승한 발해의 문화는 고구려 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초위에서 발해는 당나라의 문화와 말갈 문화 등도 받아들였습니다.

발해의 수도인 상경은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을 모방하여 만든 도시입니다.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에는 수 많은 발해의 문화재들이 있습니다.

 오랜 동안 발해의 중심지였던 상경에는 발해의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는 석등과 돌 우물등이 남아 있고요 성터들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발해의 문화는  고구려와 당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형성이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발해의 문화재 중에서 고구려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발해 석등을 비롯하여 돌로 만든 석불, 이불병좌상, 정효 공주 무덤의 벽화등이 있고요 온돌과 연꽃무늬 수막새 등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당나라 문화의 영향을 받은 문화로는 상경성의 도시 구조를 비롯하여 정효 공주 무덤등이 있습니다.

발해 문화

고구려 문화를 바탕으로 당 문화, 말갈 문화 등을 받아들여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

 

러시아에 남아 있는 발해 유적

 발해의 지역은 지금은 많은 부분이 러시아에 귀속이 되어있습니다.

지금은 러시아의 땅이 된 지역에도 발해의 흔적들은 많이 남아 있습니다.

러시아 연해주 크라스키노에는 발해 성터가 있는데요 발해의 성터에서는 대 규모의 온돌 유적이 발견됐습니다.

러시아 연해주 크라스키노에는 발해 성터에서 발견된 온돌구조는 전체 길이가 14미터에 달하고 있습니다.

발해 성터
러시아 연해주 크라스키노에 위치
발해의 성터에서는 대 규모의 온돌 유적이 발견

온돌은 오로지 고구려와 발해 유적에서만 발견되기 때문에 온돌을 통해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발해에서 우리 고유의 온돌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발해가 중국의 지방 정권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라는 것을 확실히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발해의 영광탑

발해의 도읍지인 상경용천부 유적은 중국 흑룡강성 영안현 발해진에 위치해 있는데요

상경은  중경에서 755년 이곳으로 천도한 뒤 9년간 동경으로 천도했던 기간을 제외하고

발해가 멸망할 때까지 계속 수도였던 곳입니다.

상경에 남아 있는 유적

발해의 대표적인 무덤유적

발해의 대표적인 무덤유적으로 정혜 공주의 묘와 정효 공주의 묘가 있습니다. 발해의 3대왕인 문왕의 딸인 정혜 공주의 묘는 고구려식 돌방무덤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정혜 공주의 묘가 고구려식의 무덤이라고 하면 정효 공주의 묘는 당나라 풍의 무덤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발해의 대표적인 무덤
정혜 공주의 묘 고구려식 돌방무덤
무덤길을 통해서 무덤 안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음
정효 공주의 묘 계단식 벽돌무덤
당나라 풍으로 그려진 벽화

돌방무덤은 흙으로된 봉토아래에 돌로 만든 넓은 방이 있는 형태입니다.

정혜공주묘는 무덤 앞에 벽돌이 깔려 있는 무덤길이 있는데요

이 무덤길을 통해서 무덤 안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정효 공주 묘의 무덤 양식은 계단식 벽돌무덤입니다.

정효공주묘 내부의 벽화

정혜 공주 묘는 돌방무덤이기 떄문에 고구려식 무덤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정효 공주 묘는 벽돌과 돌을 쌓아 만든 무덤이기 때문에

중국식 벽돌무덤의 형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정효 공주 묘에는 당나라 풍으로 그려진 벽화도 있습니다.

발해 동경성의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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