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청동기 유적으로는 고인돌을 들수가 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고인돌이 많은 국가에 속한다. 고인돌은 북유럽, 서유럽, 지중해 연안, 인도, 동남아시아, 동북아시아 등 거의 세계전역에분포하는데, 그중동북아시아의중국 요령성에300여 기, 일본에는600여기, 한반도에는3만여 기가분포한다.
유네스코세계유산위원회는
2000년 12월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남방식 고인돌]
인류가 처음 발견한 금속은 구리이다. 구리는 신석기 시대에 토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고열을 받은 구리광석으로부터 우연히 용해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구리는 강도가 약해 쉽게 변형되는 금속이므로 그대로는 도구로쓸 수가 없어 처음에는 장신구로만 사용했다. 터키 아나톨리아 고원의 차이외뉘 유적에서 구리 장신구가출토되었는데, 이는 기원전 7200년 무렵에 만든 것이다.
구리에 주석이나 아연을 섞어 청동이라는 단단한 금속을만들고 이것으로 다시 도구를 만들게 된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세계적으로는 기원전 3500년경에 이란 고원근처에서 인류최초의청동기시대가 개막되었다고 알려져있다. 우리나라에서 청동기시대가 열린시점 에대해서는 남한과 북한의 견해가 다르다. 남한에서는 대체로 기원전 10세기 무렵에 청동기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판단하나,
북한에서는 기원전 20세기경으로 올려본다
청동기 시대에는 농경 발달로계급이발생하고사유재산이 나타났다. 청동제 무기를갖춘집단들이정복활동을 활발히 하면서 군장 세력이 성장하고 국가가 나타났다. 청동은 구리와 주석을 합금한 것이다. 우리나라 청동기의 성분은 대개 구리 75%, 주석 15%, 납 10% 정도이다.
처음에는 자연 상태의 순동을 두들겨 도구를 만들었다가 점차순동과 주석을 섞은 청동을 사용하게 되었다. 청동은 녹는 온도가 700~900℃ 정도로 민무늬 토기를 구울 수 있는 온도에서 제련할 수 있었다.
청동은 순동보다 훨씬 강하지만 구리와 주석이 아주 귀하였기 때문에 대량 생산하기 어려웠다. 청동은 주로 지배층이쓰는 장신구, 무기, 제사용구등에 사용되었다.
농기구는 여전히 돌을사용하였지만 쓰임새에 따라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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