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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고대

신라 금관

by 산골지기 2014.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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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사람들은 금이나 은으로 장식물을 만들었다. 임금이 쓰는 왕관이나 귀고리, 팔찌 목걸이, 반지허리띠와 같은 장식물들을 금이나 은으로 만들었다.

 

 


 

 

금과 은으로 된 꾸미개로 장식을 한 귀족을 보고아라비아 사람들은 신라를 황금의 나라라고 했고 일본사람들은 눈부신 금은의 나라라고 불렀다. 하지만 모든 신라사람들이 금, 은을 썼던것은아니다 

 

금그릇은 왕족인 성골만쓸 수있었고 은그릇은 진골까지만쓸수 있었다.  신라는 골품제라는 엄격한 신분제도가 있어 신분에 따라 관직, 집의 크기와 방의 수, 옷감의 질과 모자의 종류등 일상생활과 정치생활을 엄격하게 제한하였다.

 

신라 금관은 현재까지

모두 6점이 출토되었다.

 

 

그 중5점은금관총, 서봉총, 금령총, 헌마총, 쌍분인 황남대총의 고분에서 발굴된 것이고 1점은 경주 교동에서 도굴된 것이다.

 

 

그 중 교동에서 도굴된 금관은 둥근테에 단순히 나뭇가지를 추상화시킨 출자 모양의 세움장식 세 개만이 붙어 있고 나머지는 여기에 사슴뿔모양 세움장식이 한쌍씩 덧붙어 있다.

 

 

 


 

 

 

그러나 신라 금관은 왕관이 아니다. 이 여섯개의 금관은 5세기중엽부터 6세기 전반의 마립간 시대 유물로 이 시기 신라의 왕은 눌지, 자비, 소지, 지증 등 김씨 4명에불과하다. 또 서봉총은 여자의 무덤이고, 금관총은 15세 전후의 아이 무덤이다.

 

부부합장의 황남대총을보면 남자무덤에는 금동관이 출토되었는데, 여자무덤에는 오히려 금관이 출토되었다. 금관은 피장자가 생전에 머리에쓰던것을 부장한 것도 아니다. 금관이 고분에서출토되는 상황을보면, 지금 박물관에 있는것처럼 세움장식들이 확짝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니라 머리위 꼭짓점에서 세모뿔 모양으로 뭉쳐져 있었다.

 

 

게다가 금관의 테두리는 머리에 엊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인골의 턱 아래쪽까지 내려와 얼굴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근래에는 금관에 대한 다양한 이론들이 나오고 있는데  신라금관이 시조와 하늘에 제사지낼때 제관이 쓰던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 경우에도 왕이 쓰는 왕관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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