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중국사57 돌궐족 돌궐족은 6~8세기경 몽골 고원과 알타이 산맥을 중심으로 유목생활을 하던 투르크계 민족이다. 이들은 처음에는 소그드 문자를 썼고 후에 돌궐 문자를 만들었다. 족장 토문 때 세력이 강대해져 551년에 투르키스탄을 경략한 후 유연을 멸망시킨 뒤 거란을 정벌하고 키르기스를 장악하고 사산 왕조 페르시아와 협력하여 에프탈을 멸망시키고 세력을 떨쳤다. 돌궐족--- 7세기 당에 멸망 카간의 지위를 둘러싼 싸움으로 통일 기반이 취약해 583년 서돌궐과 동돌궐로 나누어졌다. 동돌궐에서는 세 카간이 연이어 옛날의 국력을 회복했고, 서돌궐에서는 두 카간이 서방의 페르시아·쿠샨 등을 정벌하고 투르키스탄에서 패권을 장악했으며 지리적 중요성으로 동서 문화와 경제교류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동돌궐은 630년에, 서돌궐은 657년에.. 2016. 9. 19. 송나라 후주의 병마절도사였던 조광윤은 정변을 일으켜 송을 건국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관료주의적 지배체제는 점차 부패되었고, 여진족·몽골족이 북방 변경의 주를 침입했다. 여진족은 화북 지방을 점령하여 금을 세웠다. 그러나 그들은 양쯔 강 이남의 송 지배지역은 점령하지 못했다. 1127년 고종은 강남지방으로 천도하여 남송을 세웠다. 몽골군은 1211년 금의 정벌과 함께 화북지방으로부터 중국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1250년 몽골군은 남송 정벌에 나섰고, 1276년 수도 임안이 함락되어 남송은 멸망했다. 송대에는 상업이 유례없이 발전했으며, 유교경전의 출판과 활자의 사용이 시작되어 문학과 학문이 크게 발전했다. 다양하고 풍부한 문화적 업적으로 인해 송은 중국의 위대한 왕조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2016. 9. 10. 몽고계의 한 종족... 거란 몽고계의 한 종족으로 추정되는 거란은 모용연에 의해 격파된 선비족이 우문·해·거란으로 분리된 4세기 전반부터 사서에 등장한다. 이들은 필요할 때는 서로 잠정 동맹을 맺었으나 내부적으로는 끊임없이 충돌을 일으켰다. 이러한 상황은 당의 기미지배로 바뀌었다. 628년 거란 8부의 수령들이 모두 부족을 이끌고 내속해왔다. 당은 이들을 10주로 나눈 후 마회를 도독으로 임명하여 8부를 통할케 했으며, 730년까지 대하씨가 도독의 지위를 독점했다. 이후 10세기초에 이르는 동안 거란군장의 지위는 요련씨로 넘어갔고, 그들 중 일부는 그 지위를 강화시켜 나갔다. 야율아보기는 종래 8부족 연합체를 붕괴시켰으며, 자신의 군사력·경제력을 바탕으로 907년 카간에 즉위하였고, 916년 거란의 여러 부족을 통합하여 요를 건국했다. 2016. 8. 18. 명의 황제 주원장은 황제가 된 후 자신과 함께한 건국 공신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숙청한 것은 유방의 공신 숙청과 함께 유명하다. 하지만 몇몇 장수들만 부분적으로 숙청을 한 유방과 달리 주원장은 자신을 도와준 공신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다 죽여 버렸다. 개국공신 호유용과 남옥이 반란을 꾀한다고 하여 각각 숙청 하였는데 이들 무리로 몰아 죽인 사람만 해도 도합 5만 명 가까이나 되었다. 명나라의 개국황제 주원장은 중국 역대 개국 황제 중에 성품이 가장 악랄하고 잔인했는데 이러한 성품들을 후대 황제들이 모두 이어 받아 명나라는 중국 역사상 가장 잔인한 형벌과 사법제도를 갖추게 되었다. 한국에서 알고 있는 사지를 찢는 능지처참이란 이름을 가진 형벌은 중국과는 다른 것인데 원래 (중국에서)는 '거열형'이라고 한다. 즉 사지.. 2016. 8. 17. 이전 1 ··· 9 10 11 12 13 14 1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