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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독립운동

근화회

by 산골지기 2015.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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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마리아는 이 같은 고학 생활 중에도 한 시도 조국 독립의 염원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녀는 1928년 2월 12일 황애덕, 박인덕 등 미국에 유학 중인 여학생들을 중심으로 여성 독립운동 단체인 근화회(槿)를 조직하였다. 

 

그녀는 이 회의 회장으로서 회원들과 함께, “조국 광복의 대업을 촉진하기 위하여 재미 한인사회의 일반 운동을 적극 후원”하는 활동을 벌여 나갔다. 그리고 1930년에는 뉴욕의 비블리컬 세미너리(Biblical Seminary)에서 신학 교육을 받았다.

 

 정부는 김마리아에게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1933년 망명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하였지만, 일제의 감시와 압박으로 말미암아 서울에서 활동하지 못하고 원산()의 마르다 윌슨 신학교에서  신학을 강의하였다.

 

이 때에도 그녀는 종교 모임과 강론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등 지속적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고 이후  고문 후유증이 재발함에 따라 평양기독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던 중인  1944년 3월 13일에 순국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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