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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독립운동

김마리아의 활약

by 산골지기 2015.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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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학 기간 중 도쿄 한인 기독교청년회(YMCA) 활동과  조선독립청년단 조직에 참여하였다.

 

  1919년 도쿄 유학생들의 2․8 독립선언에도 참여하였고 이 일로 일본 경찰에 두 차례 체포되어 조사를 받았으며 삼일운동 직전 독립선언문을 몸에 감추고 귀국하여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삼일운동 때 황해도 봉산과 서울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고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았고 고문으로 뼈 속에 고름이 차는 병으로 재판을 받을 수 없는 형편이 되어 8월에 가석방되었다.

  당시 정신여학교 교사와 동창생을 중심으로

 장로교 여성들이  혈성부인회를 조직해 활동하고 있었고

감리교 측에서도 이화학당의 황애덕을 중심으로

비슷한 조직이 활동하고 있었다.

김마리아는 석방후  두 조직을  결합하여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결성하고  회장이 되었다.


    애국부인회는  군자금 모금 ,

상해임시정부 조직과 해외에서 파견된

독립운동가 지원 등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펼쳤다.

 

 1919년 11월 동지의 배반으로 조직이 탄로나 김마리아를

 비롯한 애국부인회 간부 40여 명이 체포되어

대구에서 혹독한 고문과 악형을 받았다.

 

 병보석으로 풀려났던 김마리아는 또다시 고문 악형을 받았고 결국 예심 종결을 마친 1920년 5월 ‘빈사상태’에서 가석방되었다(그는 1920년 6월 궐석재판에서 3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김마리아

저자
전병무 지음
출판사
역사공간 | 2013-12-06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이 책을 통해 근대 전환기와 식민 지배를 겪어야만 했던 한국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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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마리아는 1920년 7월 삼엄한 감시를 뚫고  중국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 조직에 참여하였다가 1923년 미국에 유학 했다. 

 파크대학과 시카고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안창호의 흥사단 운동에도 참여하였다.

 

 1933년 귀국하여 캐나다연합교회 선교부에서 운영하는 원산 마르다윌슨신학교 교수로 활동했다. 이곳에서 약10년 동안 여성 교역자 양성 활동을 하던 그녀는 고문의 후유증으로 인하여 병으로 1944년에 사망 하였다.

 



   그가 귀국했다는 소식을 들은 춘원 이광수는 “누이야-조선 여성에게”라는 제목의 시를 <동광>에 발표하여 그의 애국운동을 칭송했다.

이광수는 일본 도쿄 유학시절 감마리아와 동지 관계를 맺었던 사이였고   2․8독립선언서를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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