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천명은 1911년 9월 1일 황해도 장연군 순택면 비석포리에서 노계일과 김홍기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 노계일은 비석리의 소규모 지주이자 무역업에 종사하였으며,
천주교 장연본당[4] 오빠 노기철과 언니 노기용, 그리고 이복 남동생 노기숙이 있었다.
본명은 노기선인데 어릴 때 병으로 사경을 헤맨 뒤 천명으로 개명하게 되었다.
유년 시절 병으로 앓아 누웠을 때 그의 아버지는 노루 사냥을 직접 하여,
노루의 피를 먹이기도 했다. 6세 때 홍역을 앓았는데 20일이 지나도록 고열과 혼수 상태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어머니 김홍기의 지극한 간호 끝에 죽음 직전에서 살아났고,
이를 하늘이 주신 명이라 생각하여, 아명 기선(基善) 대신 천명으로 호적에 이름을 올렸다.
그의 집안은 천주교 신자였지만 노천명이 정식으로 천주교인으로 세례를 받은 것은
6.25 전쟁 직후인 1951년 부산 중앙성당에서였다. 어려서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옥루몽을 읽어주기도 하였다.
1918년 아버지 노계일이 사망하자 어머니 김홍기는 가산을 정리하여 경성부로 상경,
외가 근처인 경성 체부동 이모의 집에서 생활하였다. 이후 노천명은 다시 창신동으로 옮겼으며 1921년 진명보통학교에 재입학했다.
보통학교 3학년 재학 중인 1923년 언니 노기용이 변호사 최두환과 결혼했는데, 언니와 형부가 학자금을 대었다.
1926년 4월 진명보통학교 5학년 재학 중, 검정고시에 합격하여 1년 앞당겨 졸업하고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로 진학했다
. 진명여고 재학 중 그는 체육에 능해 달리기 선수를 하기도 했다.
진명여고 재학 중 그는 어휘력이 뛰어나 국어사전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1930년 3월에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나와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과에 진학하여 1934년 봄에 졸업하였다.
'투데이 >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산양삼 (0) | 2025.10.03 |
|---|---|
| 시인 김동명의 문학관 (0) | 2025.09.14 |
| 세계의 빌딩 (0) | 2025.08.18 |
|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9개 서원 (1) | 2025.08.03 |
| 두릅나무 재배 (0) | 2025.0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