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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대의 호국 고장 칠곡

by 산골지기 2022.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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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은 6.25사변 당시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면서 전세를 반전 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던 호국의 고장이다.

1050625일에 남침을 개시한 북한은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파죽지세로 남하를 하여 815일까지 부산을 점령한다는 계획하에 낙동강 유역에서 맹렬한 공세를 전개했다.

그러나 대구의 북쪽에 인접한 칠곡에서 남하가 저지되었고 이곳에서 커다란 승리를 거두게 된다. 칠곡 지역에서의 승리는 단순한 전투 승리의 차원을 넘어 전체적인 전세를 반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6·25전쟁 당시 81일부터 924일까지 55일간 혈전이 벌어졌던 칠곡은 위기상황에서 전세 역전의 계기가 된 '다부동 전투'로 유명하다.

924일 천생산 진지를 탈환할 때까지 55일간이나 계속됐던 다부동 전투에서는 북한군 24천여명과 국군 1만여명이 죽거나 다치는 참상을 빚어졌다.

칠곡에는 낙동강 인도교폭파, 328고지 백병전, , 유학산 전투, 다부동 볼링엘리 전차전, 융단폭격 등 자유주의 수호의 마지막 보루였음을 증명하는 전쟁의 역사가 곳곳에 간직돼 있다. 전쟁 당시 최후의 방어선이었던 낙동강 칠곡전투의 반격시점이 9월이었기 때문에 칠곡에서는 20139월에 제1'낙동강세계평화 문화 대축전'이 열렸고 매년 이 행사를 개최하면서 칠곡이 우리나라 최대의 호국의 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다.

칠곡의 6.25 사변 관련 전적지

다부동은 대구 북쪽으로부터 22km, 상주와 안동에서 대구에 이르는 5번 및 25번 도로가 합쳐지고 왜관에 이르는 997번 지방도로의 시점이 되는 교통의 요지였다. 다부동을 중심으로 북서쪽에는 유학산이 있고 동쪽에는 지역내에서 가장 높은 가산이 있어 방어에 유리하였다.

그러나 이 방어선이 돌파되면 대구가 적 포병사격의 사정권내에 들어가게 되는 중요한 지역이었다.

만약 유학산이 점령돼 북한군이 대구시를 포로 공략했다면 국군과 유엔군의 낙동강 방어선 사수가 어렵게 되고 임시수도였던 부산의 운명도 가늠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부동전투는 924일 천생산 진지를 탈환할 때까지 55일간이나 계속됐으며 이 기간동안에 북한군 24천여명과 국군 1만여명이 사상을 당하는 참상이 벌어졌다.

볼링앨리 전차전이 펼쳐진 천평동 계곡

다부동전투에서는 6.25사변이 시작된 이후 최초의 전차전이 펼쳐졌다. 한미연합작전으로 북한군과 천평동 계곡에서 펼쳐진 전차전을 미국에서는 볼링앨리전투라 부르고 있다.

볼링앨리는 포탄이 날아가 후방에서 폭발하는 상황이 마치 볼링공으로 핀을 넘어뜨릴 때의 모양과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6.25전쟁 초기에 북한은 소련제 T-54탱크를 앞세워 낙동강 근처까지 쉽게 내려올 수 있었다. 그러나 다부동의 천평동 계곡에서 미국 기갑부대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을 하게된다.

볼링앨리 전차전은 821일 밤에 전개가 되었다. 821일 날이 어두워지자 북한군은 미 27연대를 향해 공격을 펼쳤고 좌우에 있는 국군 1사단 11연대 쪽으로도 보조 공격을 해왔다. 어두워진 천평동 계곡은 미군이 발사한 조명탄으로 삽시간에 대낮처럼 밝아졌는데 북한은 전차를 앞세운 가운데 차량과 보병이 함께 공격을 펼쳐왔다.

북한군은 전차 7대와 자주포 3문이 사격을 하면서 전진해 왔고, 그 뒤로 19대의 차량과 산개한 보병이 도로 양쪽을 이용하여 뒤따라 왔다. 미군은 화력을 집중하여 북한군 보병과 전차를 분리시켰고, 미군 전차도 약 200m 거리에서 전차포를 사격하여 적 전차 1대를 파괴하였다.

때를 같이하여 미군 3.5인치 로켓포가 자주포를 단 한발에 파괴하였으며, 1대의 적 전차가 진지 전방에 설치된 대전차호에 빠졌다.

선두 전차조가 파괴당하자 당황한 북한군은 전차와 자주포가 정지한 채 아군에게 포격을 가해왔고 6.25사변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전차 대 전차의 사격전이 벌어졌다.

북한군은 다음날 후방으로 물러났는데 이 전투에서 전차 7대와 자주포 4문이 파괴되고 1300여 명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21일 밤에 펼쳐진 천평동 계곡 전투후인 822일에는 북한군 북한군 13사단 포병연대장 정봉욱 중좌가 많은 작전지도를 가지고 귀순해 왔다.

사단의 포병 연대장이 귀순을 결심할 정도로 북한군의 기세는 크게 꺾였다고 할 수가 있는데 볼링 앨리의 전투가 끝난 뒤 수암산과 유학산에 있던 북한군도 물러나는 기미를 보였다.

천평동 계곡에서 펼쳐진 전차전에서 우리가 승리하면서 낙동강 전선에서의 북한군의 기세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 전투에서 패하면서 북한군이 산악지대의 고지를 점령해 다부동에 이어 대구를 점령하려 했던 계획은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으며 총력전을 펼치며 다부동을 돌파하려고 벌였던 북한군의 막바지 8월 공세도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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