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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고대

발해의 산업경제

by 산골지기 2016.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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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초기부터 만주 동부지역 천연자원의 개발과 이용, 고구려 이래의 농업과 수공업의 발전, 주변국과의 대외교역 확대를 통한 국력증대에 힘썼다.

위성은 중경현덕부내 철주의 수현으로 제철산업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다. 고구려의 발달된 기술을 이어받아 제철기술이 매우 높은 수준이었으므로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은 발해의 유민들을 요주를 비롯한 거란의 주요 철 생산지에 집단 이주시켜 제철업에 종사시켰다.

현주는 중경현덕부에 속한 6주 가운데 수주로 두만강 하류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발해가 후당에 수출했다는 세포는 현주의 포였을 것으로 보이며, 발해 성립 이전 함경도지역에 있던 옥저의 특산인 맥포도 이 현주의 포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발해의  명품

 위성의 철, 현주의 포, 노주의 벼, 용주의 주(紬), 옥주의 면 

 

 

 

 벼로 유명한 노주도

 중경현덕부 산하의 6주 가운데 하나로

하이란 강[海蘭河] 유역 평야지대에

있었던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이로 보아 중경현덕부에 속한 두만강 하류 일대는 벼·포·철 등이 모두 생산되는 경제의 중심지대였던 것 같다.

 

용주는 상경용천부에 소속된 주의 하나로 현재의 헤이룽장 성[黑龍江省] 닝안 현[寧安縣] 일대로 비정된다. 주(紬)는 면포를 가리킨다. 옥주는 남경남해부의 소속주 가운데 하나이다.

옥주의 면은 동예시대 이래의 양잠기술이 발해시대까지 계승되었음을 알려준다.

 

발해는 이와 같은 특산품들을

 당·일본 등과의 교역물로 삼아 국부의 증대를 꾀했다.

대당 교역이 매우 활발해 공식적인 외교사절을 통한 교역이 총 132회에 달했으며, 산둥의 등주와 청주에는 발해 사신을 위한 발해관이 설치되어 교역 중계지로서의 기능을 겸하기도 했다.

관사무역을 겸한 발해 사신의 빈번한 왕래는 대상국인 일본에 경제적 부담을 주어, 한때 일본은 대발해 교역의 제한을 시도하기도 했다.

 신라도와 거란도를 이용한 대신라·거란 교역도 있었을 것이나 구체적인 내용은 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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